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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정의채 몬시뇰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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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지성’, ‘한국 철학계의 거목’으로 불린 정의채 몬시뇰(바오로·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사진)이 지난해 12월 27일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98세.

1925년 12월 27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나 1953년 사제로 서품된 정 몬시뇰은 사제 수품 70주년을 지내고 백수를 앞둔 98세 생일에 하느님 품에 영면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0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례로 거행됐으며 유해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미사는 서울대교구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유경촌(티모테오) 주교, 구요비(욥) 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 원주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 및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정순택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정의채 몬시뇰은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큰 어른이고 지성이셨다”며 “세계의 사랑과 평화를 위한 혜안으로 존경받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늘 우리 교회와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앞장서 실천하신 분”이라고 회고하고 “권력에 기울지 않으시고 바른 말씀으로 사회의 지표가 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착한 목자의 삶을 다 하셨다”고 추모했다.

신학생 시절부터 주교품 이후까지 있었던 정 몬시뇰과의 일화를 소개한 정 대주교는 “6·25전쟁으로 공산화된 고향에서 월남하며 ‘단 한 번이라도 사제로서 미사를 봉헌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던 정 몬시뇰에게 하느님은 상상하지 못하셨을 긴 시간을 선물로 주시어 사제로 살아가게 하셨다”며 “여생 동안 교회를 위해 후학들을 위해 많은 업적을 쌓았음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의채 몬시뇰은 사제품 후 부산 초량본당과 서대신본당 보좌 신부로 사목한 뒤 이탈리아로 유학,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부터 1984년까지 가톨릭대학 신학부(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지내며 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이후 불광동·명동주교좌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후 다시 학교로 복귀해 학장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90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특명으로 세계주교시노드 제8차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양성’에 대해 특별강연을 진행했고,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 2005년 몬시뇰에 임명됐으며 199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정 몬시뇰은 생전에 가톨릭신문 기획 연재 시리즈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은퇴 사제의 삶과 신앙’에서 사제로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로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실무 총책임자로 일했던 것”을 꼽았다. 또 “주교좌명동본당에서 지성인 교리반을 운영하며 저명한 지식인 1000여 명에게 세례를 주고 오늘날 우리 교회 지성인 세계의 바탕을 이룬 것 등도 보람으로 남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정 몬시뇰은 「형이상학」, 「존재의 근거 문제」, 「삶을 생각하며」, 「사상과 시대의 증언」, 「현재와 과거, 미래를 넘나드는 삶」을 비롯해 회고록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등을 남겼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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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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