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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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미디어’, 사제와 수도자 교육에 반영해야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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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안다고 해서 곧 정치학을 아는 건 아니다. 또 신앙심이 깊다고 해서 반드시 신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취재기자와 데스크, 제작 책임자로서 근 30년 동안 언론사에서 일했다. 그럼에도 언론학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 신문사를 퇴직하고 나온 뒤 나 자신에 대해 새삼 깨달았던 점이다. 퇴직 후 나는 예상치 못하게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서 상근 심의위원으로 일하게 됐다. 신문윤리위는 전국의 신문협회 회원사들이 발행하는 종이신문 및 인터넷신문을 매일 사후 검증하는 일을 한다. 검증결과에 따라 주의, 경고 등 여러 단계의 징계도 한다. 신문업계의 자발적 옴부즈만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선 표현물에 대해 사전검증을 할 수 없다. 물론 군사혁명과 같은 비상시국 때는 예외가 발생한다. 신문과 방송, 출판물, 영화 등 어떤 매체라도 발표된 뒤에 해당업계에서 자율규제부터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는 사후 타율규제를 하는 기관이다. 만약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제소를 당한 경우라면 검찰과 법원, 언론중재위 등에서 검증하고 조처를 한다)

신문윤리위가 사후 검증의 잣대로 삼는 것은 신문 윤리강령과 윤리실천요강. 신문윤리는 세계적으로 근현대에 걸쳐 정립돼온 저널리즘의 수칙이다. 방송윤리나 인터넷윤리 등 후발 매체들의 윤리는 신문윤리를 근간으로 한다.

나는 매일같이 신문윤리 조항을 잣대로 심의업무를 하면서 저널리즘 이론과 우리 신문매체들의 윤리적 현실에 새로 눈을 뜨게 됐다. 취재하고, 글 쓰고, 제작하는 등 언론실무에 몰두하느라 언론학 등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현직 기자 시절. 그때에 비하자면 저널리즘 전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크게 확장했음을 나는 느꼈다.

게다가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 직접 겪었던 취재경험들은 효율적인 케이스로서 신문윤리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해주었다. 당시 이 같은 일상체험을 동력으로 삼아 써냈던 책이 ‘피동형 기자들’(2011년, 효형출판)이다.

때마침, 더 많은 인터넷매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해 자리를 잡았고(2021년 현재 9400여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각종 소셜 미디어들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큰 미디어 혁명, 요동치는 새 문명의 물결을 타고 축제를 만끽했다. 하지만 문명의 역습 또한 해일처럼 덮쳐왔다. 미디어들은 상업적 이윤 때문에 끝없이 저널리즘을 왜곡하고 훼손한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뉴스, 사실을 검증하지 않은 뉴스, 확증편향과 진영논리에 물든 뉴스들이 판을 쳤다.

여기에서 배태한 가짜뉴스는 세계인들의 삶에 혐오와 증오를 살포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파괴하는 흉기가 됐다. 보도에서 ‘사실’은 실종되기 일쑤여서 저널리즘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들은 그 대응책으로 관련 법규 제정, 팩트체크 시스템 강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보편적 실시 등을 추진하며 안간힘을 쓴다.

나는 새삼 미디어생태계의 급변과 그 엄청난 파장을 실감했고 틈나는 대로 학습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세상은 미디어와 경제가 좌우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잘 관찰해 징표를 알아내 적응하며 또 쇄신해 하느님을 찾자고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교회매체로부터 원고요청을 받으면 미디어 생태계 변화나 가짜뉴스, 또는 미디어리터러시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썼다. ‘과부의 헌금’처럼 별것 아닌 내용이겠지만 이 중대한 시기, ‘시대의 징표’에 대해 나의 정성을 보태고 싶었다. 그랬더니 교회 안 여러 곳으로부터 그 주제에 대한 강의와 강연, 집필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 모두에 혼자 보람을 느꼈지만 특히 인천교구 신부님들과 여자수도회연합회 소속 수녀님들에 대한 각각의 강연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과정에서는 우리 교회에 대해 큰 안타까움도 느꼈다. 시대의 징표를 잘 알아내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외쳐왔으면서도 막상 문명의 대전환기에 당면해서는 그 노력을 해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세상을 품고 갈 사제와 수도자들, 이들의 양성 과정에 미디어에 관한 교과목이 전무하다시피 한 사실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의문이다. “왜 그래야 할까?”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이냐시오)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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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6-0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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