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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한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류지현, 안나, 아나운서·커뮤니케이션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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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세월 동안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여러 경험을 해 오다 보니 맡았던 책무에 관련됐던 분마다 아나운서, 기자, 특파원, 대변인, 자문위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대표 등 각자의 방식대로 저를 부르곤 합니다. 여러 호칭이 더해가도 늘 떠나지 않는 꼬리표는 첫발을 내디딘 ‘SBS 아나운서’입니다. 아나운서 역사의 산증인과도 같은 선배들과 모이는 아나운서 클럽에 가면 ‘한번 아나운서는 영원한 아나운서다’란 말을 신조와도 같이 지켜가시는 원로 선배님들의 정신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 또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올 때마다 ‘주님의 새로운 부르심’이라고 받아들이며 기꺼이 임해왔지만, 어떤 일을 하든 늘 천직으로 생각해 온 아나운서의 뿌리를 잃지 않게 됩니다. 마치 행복하게 고향으로 찾아가는 귀성길이나 집에 돌아와 편안한 일상복을 갈아입듯 말이죠.

우리 신자들도 세례와 함께 ‘한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문득 마음에 갈등과 의혹이 찾아와서 냉담하거나, 봉사활동이나 공동체 생활 가운데 실망을 해서 신앙생활을 포기하거나, 혹은 가톨릭 신자임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거나, 때론 신앙인의 삶이 너무 익숙한 일상이 되어 주일 미사나 기도 등에 무심하게 타성에 빠지게 되더라도 결국 ‘한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처음 같은 설렘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 심어진 이 뿌리를 생각하면 신앙의 여정 속에 가끔은 멈칫하고 돌아가거나 길을 잃고 방황하며 휴지기에 머물게 되더라도, 결국 다시 익숙한 일상복을 입듯 ‘영원한 신자’라는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이후 내가 멀리 있는 듯 느끼거나 가까이 교회 안에 머물러 있다고 여기거나 우리 마음에는 이미 깊이 신앙의 뿌리가 내려졌다고 생각하니, ‘한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라는 믿음이 늘 든든히 우리의 신앙 여정을 지키게 하는 주춧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코 복음 1장 9-11절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에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들려온 음성처럼,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우리는 그 순간 각자가 이미 어떤 부르심, 소명을 부여받았을 것 같습니다. 선종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행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의무입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부르심을 받은 것’만으로도 행복의 의무를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묵상해 봅니다. 마태오 복음 28장 20절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 ‘영원한 신자’의 꼬리표에 행복하게 머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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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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