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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투가리스트 주교님 / 안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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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가리스트는 대전교구 유흥식 대주교님의 소싯적 별명이다. 정확히는 주교님이 논산 대건고등학교 학생 시절, 쌘뽈 기숙사생들에 의해 불렸던 애칭이므로 본인도 이런 사연을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쌘뽈여자중고등학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 재단이 운영하는 가톨릭계 학교다. 한 지역에서 거리가 가까운 지척에 있었던 대건고와 쌘뽈 두 학교는 마치 남매지간 비스름한 친밀감을 은연중에 느꼈던 것 같다.

유흥식 대주교님의 얼굴은 하회탈의 양반을 쏙 빼닮았다. 한창때는 듬성듬성 여드름 투성이였는데 그 모양새가 울퉁불퉁한 투가리(뚝배기의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 같아서 우리끼리 갖다 붙인 별명이었다. 언제 봐도 얼굴 온 근육이 통 크게 히죽히죽 웃고 있었던 투가리스트 옆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샌님처럼 보이는 반듯하고 곱상한 범생이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

그 학급의 반장 오빠라나 뭐라나. 아무튼 실과 바늘처럼 항시 둘이 세트처럼 움직였던 그들은 안 어울림표 2인조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담임으로 대건고등학교 가톨릭 학생회를 통솔한 올드미스터 교사가 있었는데 그의 별명은 권총이다. 성이 권씨인 꽤나 독특한 수학 선생님에게 제자들이 도전한 별명이었다.

후에 이 ‘권총’은 일말의 양심도 없이 나이 어린 미녀였던 쌘뽈의 딸과 전격 웨딩마치를 올렸다. 당시 이 사건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른바 여학생과 선생님의 결혼으로 제자급의 쌘뽈여고생이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느닷없이 그 유명한 권총에게 채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의 두 학년 위 선배였다.

성모 성월이나 성탄절, 교구장의 사목 방문 같은 본당의 무슨 행사 때가 되면 대건과 쌘뽈은 방과 후에 자주 모이곤 했다. 쌘뽈의 교정이며 부창동성당이 자리한 루르드 성모 동굴 옆의 작은 강당에서 행사 준비를 위한 성가 연습을 주로 했는데, 대건과 쌘뽈의 가톨릭 학생회가 결혼식 축가를 열심히 연습해서 불렀던 생각이 난다. 그 두 내외분이 오래도록 해로 하신다 하니 아마도 천생연분이었나 보다.

투가리스트 오빠가 전격 신학교에 들어간 사실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그리고는 신학생으로 로마 유학을 떠나고 사제품을 받고 주교님이 되시어 고향의 교구를 총괄하는 대전교구장으로 부임하셨다. 그때도 어머머, 하는 탄성이 나오고 얼마나 감회가 서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에 의해 대주교로 승품이 되었고 로마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되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성직자성은 세계 가톨릭 각 교구의 사제와 부제들의 사목활동과 영성을 도모하고 지원하는 교황청의 핵심 부처다.

짓궂은 선배로 각인이 되어 여드름 숭숭했던 그때의 표정, 함지박만 한 그 큰 웃음이 아직도 눈에 선연한데 주교님의 학창 시절. 그의 투가리스트 내력을 훤히 꾀고 있는 나로서는 감개무량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아하, 참고하건대 그때 2인조의 또 다른 멤버로 대주교님과는 아마도 평생의 절친이실 그 모범생 오빠는 이제쯤은 명예교수라는 훈장을 달고 살아가실 것이다.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 소식을 접했던 그날로부터 며칠간은 내 입가에서 절로 번지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뭔지 모르게 들뜬 기분이었다.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희년에 순교자들의 터전인 그 교구에서 마침내 로마로 입성하시는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님! 모쪼록 영원한 도읍 로마에서의 여정이 부디 행복하시옵기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윤자(벨라뎃다) 수필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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