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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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투표하는 마음(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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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은 ‘독재화’(Autocratizing)가 진행되는 국가로 평가됐다. 그동안 민주주의 상위국가에 포함되었던 한국이 몇 년 사이 독재국가로 추락했다. 보고서는 특히 ‘권력남용, 평등권 침해, 언론 검열과 탄압’을 가장 중요한 하락 요인으로 들었다. 32개 상위 국가 가운데 이런 독재화 진행국가로 분류된 국가는 한국 하나다. 이 지표만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말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룩한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려 절망하고 마음 상한 이들이 늘어만 간다.

민주주의를 포함해 어떤 사회제도이든 시민들에게 복리를 제공하고 미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누구나 품위 있고 충만한 삶을 살게 하는 공동체의 형성이야말로 제도의 방향이다. 그러니, 어떤 제도가 해악과 절망을 준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런지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자유와 균형을 기본으로 삼는 민주주의 사회다. 이때 자유는 외부의 강제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누구나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위 하는 주체적 역량의 조건을 말한다. 그래서 평가의 기준은 민주주의의 기본조건, 보편성과 개방성의 규범이다. 모든 사람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자원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과 법률에 관한 의사결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척도에 달려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그 역사에서 보듯이 복잡한 이상이다. 그렇다고 해도, 민주주의가 왜 가치 있는지,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참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숙고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살아있는 가치가 되지 못한다. 가치는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거버넌스의 형태일 뿐 아니라 삶의 태도이며 방식이다.

철학자 존 듀이는 “민주주의를 제도적이고 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우리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가 어떤 모습의 정치를 선택하는가도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삶의 태도와 문화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민주적인 정부는 민주적인 생각과 태도와 문화의 표현이다. 특히 선거는 다양한 시민들이 ‘공공성’으로서의 사회에 필요한 좋은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는 기회다. 이 목표를 두고 서로 의사소통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사사로운 선호가 아니라 공적이고 공동의 관심사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것이 특별히 중요한데, 민주주의는 특정 집단의 선호를 만족시키는 기제가 아니라, 다수가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더라도 그 목표와 결과가 공공적인 지위를 갖지 못하는 의제를 배제하고, 공동의 선을 선택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지금 한국 정치가 이런 기준에 한참 못 미칠 뿐더러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있다.

선거는 권력쟁취에 마취된 정당의 놀이터가 아니다. 우리는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되는지 물어야 하며, 보다 근본적으로 어떤 종류의 나라를 꿈꾸는지도 물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서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정치의 정신에서 핵심이 되는 애덕’이다. 이 애덕은 ‘언제나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이다.(「모든 형제들」 187항) 이 기준을 살아가는 이들이 ‘이웃’이며 그 반대가 공동선을 거부하고 자기 이익으로 똘똘 뭉친 ‘패거리’다. 이제 명확하지 않은가? 형제애를 ‘정치적인 의지’로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21세기에 독재냐 민주냐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우습지만,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다.

박상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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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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