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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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태안반도 ‘기름과의 전쟁’에 임하며

"결국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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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자연절경 파괴 ‘이중 고통’
100만 봉사자들 열성에 희망 찾아

태안반도 ‘기름과의 전쟁’이 어느 새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두 달이 지나는 시기인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6일 동안 ‘재난봉사’를 접고 설 연휴를 지내면서도 사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11일부터 재개될 재난봉사, 또다시 일상이 망가지는 기이한 현상에 대한 중압감 탓이었다.

그리고 올해의 설 명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상태로 설을 지내는 피해 주민들의 서러운 심정을 의식해야 하는 탓이었다.

설날 ‘조상들과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를 지낼 때는 더욱 애절한 마음이었고, 여러 가정에서 가져와 제대 앞에 진설했던 갖가지 설음식들을 미사 후 지하식당으로 옮겨 ‘음복’을 할 때는 이상야릇한 불편함도 감내해야 했다. 설날 오후 여기저기 조상들의 묘를 찾아 성묘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성묘 차량도 예전처럼 많지 않았고, 화사한 한복차림도 어쩌다 한두 사람 보이는 정도였다.

금년 초부터 천주교 신자들만을 집중적으로 안내, 투입하고 있는(그래서 천주교 전담 구역이나 다름없는) 태안군 소원면 모항2리 해변은 요즘 갯바닥 깊숙이 스며든 기름을 색출해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잔돌이나 모래를 긁어 걸레로 싸서 문지르기도 하고, 고압세척기로 갯바닥에 강력한 물을 쏘면서 분리되어 흐르는 기름을 흡착포로 잡아내기도 한다. 또 포크레인으로 뒤집어놓은 갯바닥에 대량의 흡착포들을 깔았다가 다음날 수거하고 다시 까는 작업도 반복하고 있다. 깊이 잠입한 기름을 색출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갖가지 수많은 생물들의 씨와 터전이 깡그리 파괴되는 현실을 다시금 목도하고 확인하는 기분에 절로 주눅이 든다.

반대편 해변에서는 포크레인이 갯바위들을 부수며 길을 만드는 작업도 실시된다. 고압세척기를 진입시키려는 작업인데, 20미터 길을 만드는데 3일이나 걸렸다던가. 아기자기하고 기기묘묘하기도 한 해변의 갯바위들을 마구 부수는 광경을 보자면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렇게 기름과의 전쟁은 생태계 파괴라는 기본 참상 위에 해변의 절경들을 우리 스스로 파괴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정말로 잃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참상 속에서 얻는 것이 있다면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아름답고도 소중한 봉사 정신이다. 직장에서 얻은 휴가를 이용하여 태안에서 며칠씩 묵으며 추운 날씨와 싸우며 방제작업을 하는 사람들, 자연의 소중함과 봉사의 참 가치를 가르쳐주기 위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 저 먼 부산과 울산과 대구 등지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하여 태안을 찾는 사람들, 방제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죄스러워하며 적게나마 성금을 보내오는 사람들….

더러는 ‘물때’와 상관없이 고작 두세 시간 작업을 하고 서둘러 떠나는 단체들도 있지만, 대개는 오래 참 열심히 일한다. 물때가 맞지 않아 오래 일하지 못하는 것을 몹시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본전 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운 날씨와 맞서며 갈 길이 먼데도 오후 4시까지 작업을 한 이들도 있다. 닦고 또 닦아도 계속 걸레에 묻어나는 기름을 보며 한탄을 하는 이들도 있고, 내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름을 닦았다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한번 와서 일하고 가는 것으로 끝이지만, 태안본당 신자 분들은 매일같이 얼마나 고생이 크시대요”하며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신자들을 맨 먼저 작업 현장으로 안내하고, 작업 장비를 챙겨드리고, 작업 요령과 여러 가지 필요 사항들을 설명 드린 다음 작업장으로 투입시켜 드린다. 점심 급식에 손을 보태고, 현장에 홀로 남아서 군청 직원을 도와 봉사활동 확인서, 세금공제 기부금확인서, 고속도로통행료 면제송장 등을 챙겨 드린 다음에는 현장을 떠나는 버스마다 올라 인사를 한다.

“여러분의 수고 덕분에 태안의 바다가 많이 살아났습니다. 앞으로도 태안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기도 중에 우리 태안을 늘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신 분들 모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 태안을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지난달 3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이시며 인천교구장이신 최기산 주교님의 격려 방문이 있었다. 작업 현장을 둘러보신 최주교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일은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노력을 가상히 보시겠지만 결국 바다를 살리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서 더욱 열심히 노력합시다.”

주교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재난봉사에 임한다. 오늘의 불행한 환경재난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연인원 100만 명을 넘어선 자원봉사자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요하(막시모·소설가·대전교구 태안본당 사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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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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