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별기고] 삶과 죽음의 문화

신승진(안나,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최근 성당 안에 납골당을 설치하는 법률의 위헌성 문제로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을 하고, TV 토론을 하는 것을 보며 죽음과 조상을 모시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0)가 떠오른다. 땅에서 많은 소출을 얻은 부자가 수확물을 모아두기 위해 헌 곳간을 허물고 다시 큰 곳간을 짓고 이제는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리라 생각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생에서의 삶이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현재의 삶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에 대해선 매우 멀고도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한 연장선상에 있으며 단지 시차만 있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매우 `평등하게` 주어질 삶의 마무리 과정이다. 그러기에 언젠가 주어질 과제인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일상을 산다면, 그러하지 않았을 때보다 하느님이 우리 각자의 삶에 부여해주신 의미를 소중히 새기며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종교인으로서 현재 삶을 주님의 뜻에 맞춰 살다가 졸업을 하고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죽음 그 자체와 장례의식,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욱 진보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십여 년 전 지인의 부친 장례식에 가면서 매우 근엄한 슬픈 표정으로 장례식장을 들어섰다. 호상이긴 했지만 의외로 상주와 종교단체의 지인들에게서는 일종의 `축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도 주님이 잘 돌봐 주시어 많은 희로애락과 천수를 누렸는데 이제는 천상가정에 들게해 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하랴`는 분위기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례식 장면이 있다. 지난 2007년 3월 영국의 전 국민적 영웅이었던 축구선수 알란 볼(Alan Ball)의 윈체스터 성당 장례식이다. "고인은 여기보다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으로 갔으며, 우리가 그를 돌보는 것보다 하느님이 더 잘 돌봐주실 것"이라는 매우 `낙천적이면서 건설적(?)`인 조사였다. 아울러 빨간색과 푸른 줄무늬 넥타이를 맨 이가 장례식 사회를 보고, 끝으로 `마이 웨이`(My Way), `오버 더 래인보우`(Over the rainbow)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박수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모습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즉,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좀 더 종교적으로 진보한다면 조상을 모시는 장소 등에 있어서 폭넓게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을 지척에 두고 자주 왕래하고 싶어 하듯이 부모님이나 존경하는 지인들을 사후에도 우리 마음의 고향인 성당에 모실 수 있다면 그분들을 더욱 피부로 가까이 느끼며 자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납골당이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성당 내 납골당 설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자녀들이 `삶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갖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삶`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참 의미`를 일깨울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세미나에 많은 주민이 참석하고 교육을 받으며 비교적 지성적 가치를 추구하기를 좋아한다는 미국 동부 보스턴의 경우, 주택가나 도심지 한가운데에서도 매우 쉽게 공동묘지를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정신이 충만한 그곳에선 하버드대 바로 앞이자 중심지인 하버드 스퀘어에도 공동묘지가 있다. 1635년에 세워진 이래 노예, 그 지역사회에 기여한 분, 하바드대 총장, 나라를 지킨 군인 등의 비석이 가득한 채로 그 지역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놀라웠지만 그 지역을 지날 때마다 공동묘지 주변의 초목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언젠가 맞이할 죽음과 더불어 오늘의 우리 삶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하느님을 영접하는 우리 지역의 성당에, 그리고 명동성당에도, 또 고급 아파트촌으로 여겨지는 압구정동성당에도 납골당을 설치하면 어떨까. 이는 현세의 우리뿐만이 아니라 조상과 자손들에게도 주님이 내려주시는 삶과 죽음의 풍성한 은총을 함께 나누는 길이 아니겠는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8-12-1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30

2코린 12장 9절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