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포졸들에게 체포돼 모진 고초를 당하고, 반역죄로 사형선고 받아 새남터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성 김대건 신부. 그의 삶은 ‘반역’과 ‘신성모독’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고난의 삶을 그대로 닮아있다.
이번 주에는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지이자, 순교 후 유체 이장 경로 중 일부인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삼덕의 길을 걸어봤다. 2011년 사순의 시작,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의 가파른 세 고개를 넘으며 주님 수난의 길을 따라가 보자.
▲ 삼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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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이성지에서 신덕고개
은이(隱里). 말 그대로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있는 동네’란 뜻이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첫 사목활동을 펼친 지역. 기록에 의하면 김대건 신부는 밤마다 이 길을 다니며 경기 용인, 이천, 안성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성사를 베풀고 사목활동을 했다. 포졸들의 눈을 피해 사목활동을 다니던 길이었던 만큼,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에 위치한 은이성지에서 신덕고개로 올라가는 산길 입구까지는 평탄한 마을길이 이어진다. 산길 입구에 자리한 식당 앞 바위를 끼고 걸어가면 ‘삼덕의 길’ 표지판이 보인다. 파란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이 글씨가 도보순례 내내 따라가야 할 표지다. 외진 산길엔 인적이 드물다. 낙엽 소시락거리는 소리와 새소리만이 가득한 고요 속에 저절로 묵상에 잠기게 된다.
산길 입구에서 10분 쯤 걸었을까. 눈앞에 가파른 언덕이 나타난다. 신덕고개라 이름 붙여진 은이고개다. 눈 덮인 고개 위로 낙엽이 수북이 쌓인 조그만 길이 나있다. 몇 걸음 채 걷지 않았는데도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언덕을 넘으니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신덕고개비가 나온다. ‘하느님은 진리의 근원이며, 그르침이 없음’을 굳게 믿는 신덕송이 고어로 새겨져 있는 신덕고개비에서 잠시 고개를 숙인다.
▲ 신덕고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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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덕고개에서 망덕고개
내리막길을 5분쯤 내려오면 다시 마을길이 나온다. 와우정사로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주목 농장 앞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 농장에는 풀어놓은 개가 많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와우정사를 오른편으로 끼고 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용인-백암간 국도가 나온다. 이 국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1km 정도 걸으면 왼편에 호3통마을 입구가 보인다. 호3통마을 입구에서 망덕고개 입구까지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만 ‘삼덕의 길’ 표지판과 순례자들이 묶어둔 ‘리본’ 표지를 찾아 따라가면 산 입구까지 쉽게 이를 수 있다.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망덕고개로 이어지는 긴 나무 계단이 나온다. 이 나무계단 끝은 망덕고개라 이름 붙여진 해실이고개다. 이 고개에는 김대건 신부 유체 이장 당시 기적 같은 일화가 숨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체를 이장하던 이민식 빈첸시오가 이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 그 호랑이조차도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모시고 가는 중이니 썩 물러나라!”는 이 빈첸시오의 호령에 길을 비켜줬다는 이야기다. 울창한 숲 속, 김대건 신부의 유체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와 맞섰던 이 빈첸시오가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망덕고개비에 새겨진 김대건 신부의 음성을 듣는다.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려 합니다.”
▲ 망덕고개비
가톨릭신문 201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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