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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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산책]<24> 건축(5) 포털, 영광의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

누구나 들어오라 초대하는 주님의 집 ''하늘나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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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5년에 지어진 프랑스의 부르주(Bourges)대성당 정면에 있는 5개의 문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광장과 도시를 압도한다. 이 문은 영광의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이다. 이 문은 시편에 나오는 그대로 `머리를 들고 있는 문`이며 `일어서 있는 문`이다. 그래서 이 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향해 언제나 웅장하게 노래하고 있는 문이다.

 헨델의 메시아 33번 합창곡은 이렇게 노래한다.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께서 들어가신다. 누가 영광의 임금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께서 영광의 임금이시다"(시편 23,9-10). 이 메시아 33번곡을 들으며 이 대성당의 장대한 문을 바라보라. 그러면 저 문의 수많은 돌들이 소리 내며 우리와 함께 찬미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문은 사람들을 그 안에 있는 세계로 이끌어준다. 또 자신의 과거를 단절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이렇게 문은 그 안에 있는 세계를 확정해준다. 문은 건물의 맨 앞에서 사람을 반기며 때로는 닫고 거절한다. 그리고 문은 안에 있던 이가 밖을 향해 출발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문은 건물의 안팎을 이렇게 이어준다. 사람이 사는 집의 대문은 방문과 달리 더 높고 크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집인 성당의 문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대성당처럼 중요한 건물의 웅장한 정문을 특별히 `포털`(portal)이라고 부른다. 포털이라 하면 천상과 지상의 이미지가 조각된 중세 대성당의 포털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건물 전체의 의미가 응축되는 특별한 장소였다. 성당의 포털은 단순히 벽을 뚫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심히 생각하면 성당의 문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으로만 여기기 쉽지만, 실은 그 문은 주님께서 들어가시는 문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문이시다. "나는 문이다"(요한 10,9). 포털은 이렇게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당의 포털에 들어서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 안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 때문에 어떠한 성당의 문도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숭고한 생각을 보여주는 상징이며, 그 의미가 지니는 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팀파눔에 많은 조각으로 장식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은 외관이 매우 간소했고,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시대의 외관에는 엄숙하면서도 침착한 건축 요소가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중세의 대성당에서는 실로 장려한 조각으로 그리스도교의 과거와 미래를 세상을 향해 있는 포털에 응축해 새겼다. 중세에서 회화와 조각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대신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당의 포털은 바깥 광장에 접해 있고 사람의 눈높이에 가까이 있으며, 성당에 들어가거나 그 앞을 지나갈 때 이 수많은 조각을 되풀이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자리였다. 포털의 조각 모티프로는 십자가, 천사, 성인, 식물,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 등이 사용됐다. 이와 같이 성당의 포털은 `하늘나라의 문`이었고,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요약하고 있는 책의 표지와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포털이 한 개였지만 내부 통로의 수에 대응해 3개로 늘어났으며 때로는 5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성당처럼 본래 통로가 셋이었는데 후에 나르텍스가 확장되면서 포털이 두 개가 된 예외도 있다. 그렇지만 성당의 규모와 관계없이 신자들은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측면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돌로 지어진 성당에서는 문을 만들려면 벽의 일부를 떼어내야 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작은 성당이라도 문을 만들 때에는 건물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문은 인방이라는 수평 부재와 이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다. 로마네스크나 고딕 대성당의 문에서는 여러 개의 문설주가 뒤로 차례로 물러나며 문의 양쪽에 붙는다. 그 문설주 위로는 다시 여러 겹의 장식 아치가 뒤로 물러나며 얹힌다. 이 때문에 실제로 드나드는 문보다 훨씬 큰 문으로 확장돼 보이는 효과를 얻는다. 이 장식 아치가 뒤로 물러나며 많은 겹을 이룰수록 성당의 벽 두께가 두껍고 견고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문 위의 긴 인방과 장식 아치 사이에 반원형이 생기는데, 이 부분을 팀파눔(tympanum, 프랑스어로는 tympan : 탱팡)이라 부른다. 이 말은 라틴어로 `큰 북`이라는 뜻이다. 눈에 띄는 장소에 있기 때문에 팀파눔에는 많은 조각이 장식된다. 정면의 한가운데에 있는 주 포털의 팀파눔 안에는 영광의 그리스도, 최후의 심판자 그리스도가, 좌우 포털의 팀파눔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등이 새겨지기도 했다. 성당의 포털은 하늘나라의 문이므로 후광으로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그 안에 들어가기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여기에서 판정한다. 일반적으로 고딕 성당에서는 구조적 이유로 문과 문 가운데에 기둥 한 개를 더 두는데, 이를 `가운데 기둥`(트뤼모, trumeau)이라고 한다. 독일 쾰른대성당의 가운데 기둥인 트뤼모에는 성모자상이 놓여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하는 순례길의 중요한 장소였던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므와삭(Moissac)의 생 피에르 수도원 성당 문에는 로마네스크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장엄한 조각이 있다. 성당 입구의 팀파눔 중앙에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어좌에 앉으신 모습이 한층 높고 크게 조각돼 있다. 그 옆에는 네 복음사가가 날개가 있는 인간(마태오), 사자(마르코), 황소(루카), 독수리(요한)로 묘사돼 있으며, 주변에는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3단으로 앉아 있다. 요한묵시록 4장의 말씀이 돌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성당 앞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은 마을과 도시 사람들이 모이는 일상의 장소여서, 이 장대한 문들은 성당 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에게도 늘 말을 건넨다. 더욱이 깊이가 있고 수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는 대성당의 남북 문 주변은 무대와 같은 공간이었다. 11세기에는 연극이 회중석에서 공연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문 주변에서 성사극(聖史劇)이 상연됐으며 음유시인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교회의 앞 광장은 극장이 됐고, 장대한 포털은 그 연극의 무대 배경이 됐다.



 
▲ 프랑스 부르주대성당(1285년). 정면의 5개 문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광장과 도시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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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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