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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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피데이 도눔" 선교 현장을 가다(하) 워터루 가르멜산의모후본당 유정규 신부(서울대교구)

먼저 다가가는 사목… "이런 신부님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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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규 신부가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꼬마와 악수를 하고 있다.
 
유정규 신부가 보좌로 사목하고 있는 시드니 워터루 가르멜산의모후성당은 무척 낡아 보였다. 성당 벽에 새겨진 기록을 보니 성당 봉헌식을 가진 날이 1859년 8월 15일, 그러니까 지금부터 153년 전이다. 낡고 오래돼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서울 명동성당보다도 40년 앞서 세워진 것이다. 성당 구석구석에 밴 오랜 신앙의 흔적이 고풍스러운 멋을 느끼게 했다.

 7월 22일 주일 오전 10시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을 보니 아시아 어느 도시 성당으로 착각할 만큼 아시아계 신자가 많았다. 시드니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이곳에는 필리핀과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것이 유 신부 설명이다. 호주가 이민자들로 이뤄진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유 신부가 주례한 미사가 끝난 뒤 가르멜산의모후본당 주임 그레고리 플린 몬시뇰이 손수 준비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식복사가 따로 없어 플린 몬시뇰과 유 신부가 매 끼니를 직접 해먹는다고 했다. 그나마 저녁은 제대로 차려 먹는 편인데, 아침과 점심은 시리얼이나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운다. 그래서 금방 허기가 진다고 유 신부가 웃으며 말했다. 이날 플린 몬시뇰이 선보인 점심 요리는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야채구이. 직접 요리하는 데 이력이 붙어서인지, 무척 맛있었다.

 앞서 소개한 김세진ㆍ우용국 신부가 사목하는 본당에서는 주임 신부가 모두 휴가를 떠나 서울대교구 사제와 함께 사목하는 주임을 만나기는 플린 몬시뇰이 처음이다. 플린 몬시뇰이 유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한국과는 상황이 매우 다른데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찾아오는 이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유 신부가 이들을 자주 찾아가 성사도 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좋습니다. 요리와 빨래, 청소 실력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하하."

 아닌 게 아니라 노인과 환자 방문은 유 신부가 가장 큰 의미를 두는 사목활동이다. 한국과 달리 미사 참례 이외 본당 활동은 거의 없는 호주교회 특성상 사제가 신자들을 개인적으로 볼 기회는 매우 드물다. 사제가 신자를 직접 찾아가지 않는 한 만날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 신부는 매일 두 명꼴로 노인 환자들을 방문한다. 차를 마시면서 상담을 겸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신자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사제가 직접 집으로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반겨주세요. 저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시시콜콜 대화하는 것은 영어 실력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2000년 사제품을 받은 유 신부는 42살로, 시드니대교구에서 피데이 도눔 선교사로 사목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사제 3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사제품을 받은 후 명일동ㆍ사당5동본당 등 여러 본당 보좌를 지냈고, 교구청 사목국 기획실 차장으로 일했다. 2010년 11월 시드니대교구로 온 뒤 준비 기간 삼아 성마리아주교좌본당 보좌로 있다가 올해 1월 이 본당에 부임했다. 유 신부가 피데이 도눔 선교사를 지원한 데는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쌓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어린 시절,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가 사목하는 성당을 다니면서 그런 선교사로 살고 싶은 꿈도 있었다.

 시드니대교구에서의 선교사 생활은 기대감을 실망시키지는 않았지만 어려움 또한 만만찮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문화적 이질감이다.
 "아무래도 이방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지요. 대화로 해결해야 하는데, 언어 때문에 원활한 소통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한국과 다른 사목 환경도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한국교회 본당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본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젊은이나 사목위원들이 없다는 것이다. 병자 영성체를 가도 한국 같으면 봉사자들이 동행하면서 일일이 챙겨주는데, 호주교회에는 그런 봉사자도 없다. 한마디로 사제가 알아서 다 챙겨야 한다. 그렇다 보니 신자들을 대하는 자세 또한 한국에서와는 많이 달라졌다. 신자 한 명 한 명에게 더 꼼꼼한 정성을 들이게 되고, 그만큼 보람과 의미도 크다. 유 신부는 호주교회에서, 먼저 다가가는 사목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은 가만히 있어도 신자들이 찾아오고, 또 성당이 신자들로 북적이지만 호주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서서 찾지 않으면 할 일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배웠습니다. 선교가 딴 게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는 것을요. 그 마음만 있으면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호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해볼 수 없는 경험이다. 비단 해외선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신자든 미신자든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사목의 첫걸음이라는 값진 공부를 한 것이다. 유 신부는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목을 해야 할지를 이곳에서 배웠다"고 거듭 말했다.

 서울대교구가 시드니대교구에 피데이 도눔 선교사로 파견한 김세진ㆍ우용국ㆍ유정규 신부에 대한 현지 교구와 신자들 반응은 매우 좋았다. 세 신부 역시 어려움이 없지는 않으나 잘 적응하면서 보람 있는 선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드니(호주)=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 유정규 신부와 본당 주임 그레고리 플린 몬시뇰.
 


가톨릭평화신문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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