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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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사시사철 야생화로 가득한 수원성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 야생화는 마치 성모님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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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개미취를 보고 있는 나경환 신부.
나 신부는 앞으로 성지에 미루나무를 더 심어 이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현양해나갈 계획이다.
 
사람의 손길 없이도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아 꽃을 피워내는 야생화. 산에서 들에서 어디서든 만나볼 수 있는 야생화였지만 사람들의 터전이 도시화 되면서 야생화는 산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식물이 됐다. 하지만 이런 도심 속에서도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성지가 있다. 바로 수원성지(전담 나경환 신부)다.

■ 사시사철 꽃피는 성지

수원 성지를 둘레둘레 굽어가는 묵주기도 길. 그 모습이 수원 화성(華城)의 모습이다. 묵주 알 하나하나가 화성 봉화대의 굴뚝 모양을 따왔고 전체 둘레도 화성을 30분의 1로 줄인 크기다. 신앙 선조 정약용이 설계하고 또 2000여 명의 순교자가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화성을 닮은 묵주기도의 길.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따라 묵주기도를 바치는 길이다.

“어머나, 예뻐라! 이런 데 꽃이 있네? 세상에 이렇게 더운데도 꽃이 피는구나.”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기도하던 한 순례자가 탄성을 자아냈다. 묵주기도의 길에 핀 야생화를 발견한 것이다. 봄과 가을이 꽃이 피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수원성지에 피는 야생화는 800여 종. 한여름에도 수크령, 보리사초 등의 사초류와 벌개미취, 등갈퀴, 큰낭아초, 석잠풀 등 50여 종의 꽃이 핀다. 또 수원일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마타리나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개머루, 바닷가가 아니면 잘 자라지 않는 범부채, 해당화도 수원성지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야생화가 수원성지에서 자라는 모습은 야생화 전문가에게도 놀라운 일이다.

가지각색의 야생화들은 2월부터 12월 말에 이르기까지 거의 1년을 통틀어 끊임없이 꽃을 피운다. 때로는 작고 때로는 지나치기 쉬워 얼핏 가치 없어 보이는 야생화지만 인공적으로 꾸며져 화사하지만 쉽게 질리는 인공화초와 달리 볼수록 빠져드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 순교자의 뜻을 기리며

수원성지에 야생화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이곳에서 순교한 선조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일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초목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이곳은 박해시대 때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되던 토포청이 있던 자리로 2000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의 피로 적신 땅이다. 당시 토포청 주변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처형한 천주교 신자들을 미루나무에 매달아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줬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나경환 신부는 수원성지에 미루나무를 키우고자 했다. 그러나 공해에 약한 미루나무를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개발 전이었으면 모르겠지만, 도심지에서 미루나무를 키우는 것은 무리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 신부는 포기하지 않고 궁리해 찾은 방법이 바로 성지 전역에 야생화를 심는 일이었다.

야생화 심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생화에 능통한 봉사자와 함께 방방곡곡 야생화를 찾아다녔다. 하루 이내에 옮겨심기를 하지 않으면 쉽게 시들어버리는 야생화의 특성 때문에 그날 공수해온 야생화를 밤새도록 심은 일도 부지기수다. 또 이렇게 힘들게 심어놓으면 신자들이 잡초라고 생각하고 뽑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이 잡초에게도 잡권이 있다”며 풀 뽑기를 금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니기를 벌써 50여 차례. 묵주기도의 길과 십자가의 길이 야생화로 가득해지자 기적처럼 미루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 시작했다. 게다가 족제비, 너구리, 청설모 등의 동물들도 나타나 쉬어가곤 했다. 나경환 신부는 앞으로 성지에 미루나무를 더 심어 이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현양해나갈 계획이다.

■ 성모님처럼 피는 꽃

도심지에서도 야생화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수원성지. 묵주기도의 길과 성모상이 자리한 십자가의 길을 수놓은 야생화는 성모님을 연상시키는 꽃이기도 하다.

4~5월이면 십자가의 길 정원에는 장미, 백합과 더불어 성모님을 상징하는 제비꽃이 피어난다. 겸양이라는 꽃말을 지닌 제비꽃은 성실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신 성모님을 상징하는 꽃이다. 제비꽃뿐 아니라 야생화가 지닌 생명력과 자연스러움은 성모님과 함께 순교자들의 믿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수원성지는 성지 내에 운영하는 ‘뽈리화랑’에서 수원성지에 자라고 있는 야생화를 전시,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성모님과 순교자의 뜻을 기억하도록 돕고 있다. 수원성지의 목표는 야생화 1000여 종이다.

나경환 신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절제하고 보면 볼수록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야생화는 마치 성모님과 같다”면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잡초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마침내 순교의 꽃을 피워낸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억하게 해준다”고 전했다.


 
▲ 범부채.
 


가톨릭신문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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