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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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지도] (8) 도심 한복판의 신앙성지 서울 명동

역사와 함께 신앙과 함께
서울 중심에 꽃 핀 가톨릭문화
번잡한 고층건물 속 명동성당 중심으로 영적 쉼터 형성
명례방 수표교에서는 한국교회 초석 이룬 선조들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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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 명동역 → 명동성당→ 명례방 → 수표교



명동(明洞), 서울시를 상징하는 번화가다. 최근에는 연간 685만 명의 외국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국내 최고의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한국 금융의 중심지이자 첨단 유행 문화의 시발점이기에, 한국 사람이 ‘명동’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명동은 모든 것의 중심으로, 백화점, 호텔, 극장, 은행 등 없는 것 없다. 그래서인지 주중이고 주말이고 매일같이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런 명동에는 한국교회의 신앙 중심지인 ‘명동성당’도 있다. 한국교회 최초의 본당 공동체이고 1980년대 민주화의 성지로, 지금은 누구나 찾아와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가톨릭지도’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가톨릭문화가 새겨진 거리에 발자취를 남겨본다.



■ 도심의 영적 안식처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서자, 주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다. 모두 관광객들이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중국어와 일본어에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다행히 거리는 복잡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도 많아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밀려가다시피 지나가야 하는 저녁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노점과 매점이 이제 막 영업 준비를 시작하는 민낯의 명동거리를 가뿐하게 지나, 가톨릭지도의 시작점인 명동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한국교회의 신앙 중심지 아니라고 할까봐 명동성당도 이미 북적거렸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일 하루 동안만 미사가 10대나 봉헌되는데도, 미사 참례를 위해 기다리는 신자들의 줄이 매 미사 시간마다 길게 늘어서 있다. 100년이 훌쩍 넘은 고풍스러운 성당과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신자, 그 앞으로 보이는 명동의 고층 건물들은 한데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각박해지는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모습에 같은 신앙인으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 신앙의 뿌리가 깊은 명동성당은 세례를 앞둔 예비신자들에게 필수 성지순례 코스다.
 
 
성당 뒤편 성모동산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이다. 엄숙한 모습에 발소리 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기도하는 무리 중에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한국을 여행하면서 꼭 한 번 명동성당에 와보고 싶었다는 프랑스인 세바스찬(26)씨는 “주일에 이렇게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찾아오는 것이 놀랍다”면서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에 자극을 받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청해 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동성당은 꼭 신자들만 찾는 공간은 아니다. 평일 점심시간만 되면 인근의 직장인들이 음료수를 들고 이곳으로 산보를 나온다. 복잡한 명동 한복판에서도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성현지(29)씨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동료들과 명동성당을 온다”면서 “네모난 사무실에 갇혀 있다가 이곳에 나오면 기분도 좋아지고 또 뭔지 모를 편안함도 느낀다”고 말했다.

성당은 현재 새 단장을 위한 변신 준비로 한창이다.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언제나 찾아올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이자 쉼터를 갖추고, 다양한 문화적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와보고 싶어하는 공간, 명동성당의 변신이 기대되는 이유다.


 
▲ 성모동산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엄숙하게 느껴진다.
 


 
▲ 성당을 꽉 채운 신자들의 모습.
 

■ 뿌리 깊은 신앙촌

명동성당은 교회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 창설 직후 형성된 신앙 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현 외환은행 앞)가 성당 부근에서 시작됐고, 가톨릭대사전에 무려 여섯 장에 걸쳐 이곳 성당에 대해 설명이 나올 정도이니 두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지금은 성당과 중국대사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가지역이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이 지역은 주택지로 밀집을 이뤘다. 이승훈(베드로)이 수표교 인근의 이벽의 집에서 최초의 세례식을 거행했고,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가 자신의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어 신앙의 집성을 이루기도 했다.

한국교회의 초석을 만든 이들 장소들은 현재 표지석으로만 그 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을지로, 청계천 등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장소지만 신자들도 잘 모르고 지나가기 일쑤다. 서울대교구가 신



가톨릭신문  201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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