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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자살예방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⑥새 살이 돋아나듯(자살로 가족·친지·환자를 잃은 남은 자에 대한 영적 돌봄)

남겨진 이들의 상처 치유 받을 창구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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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숙 교수(가톨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우리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 죽음으로 이별의 고통과 마주친다. 예상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가 우리를 당황하게 하지만 자살은 차원이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선택했다고 하면 남겨진 사람들(유가족 또는 생존자, survivor)이 겪는 슬픔은 크게 달라진다. 자살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했어야만 할 것 같은 죄책감이 짓누르고, 주변의 눈총과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크나큰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린 흐느낌과 분노로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변 6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1만 5000여 명의 자살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하니 10만여 명의 남은 자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를 누적 숫자로 계산하면 몇백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가슴 속에 큰 상처가 새겨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s, PTSD)를 겪기도 한다. 이것은 그 당시 상황이 자꾸 떠올라 우울감과 부정, 즉 `왜 그랬을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등의 감정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말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서로 부딪치며 가족 간에도 상처를 입힌다.

 이들은 상실로 인한 고통으로 죽은 자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 자살의 고위험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유가족 자조모임이 필요하다. 힘든 경험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회복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처지가 될 수 있어 서로 지탱해 줄 수 있다. 자살예방을 위한 전화상담에 참여하는 많은 자원봉사자가 자살자 유가족이다.

 자신의 애도반응을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하면 그만큼 치유과정은 늦어진다. 그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이해받을 수 있는 자조모임을 통해 위로와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 이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진실은 △첫째, 자살 책임이 결코 나한테 있지 않다는 것 △둘째, 설령 자살을 막았더라도 자살 시도는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셋째, 분명히 이 일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겠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넷째, 잊을 수 없는 이 일을 삶의 일부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조모임 참석자들은 서로의 경험을 듣고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또 슬픔을 표현하고 수용할 수 있으며, 두려움과 걱정에 대해 의논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나눌 수 있다. 이는 세상과 단절돼 혼자라고 느끼기 쉬운 참석자들에게 공감을 통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며 긍정적 사고를 갖게 한다.

 상처를 지닌 친구를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친구 곁에 있어주거나 안아주거나 같이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들어주는 것이다. 친구 자신이 준비됐을 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반복된 이야기를 계속하더라도 들어주는 것이다.

 직장 동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사별한 사람이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일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돌아가는 것이 좋기에, 가능하다면 한동안 자율 선택제나 시간제로 근무하도록 권한다.

 가족의 자살로 남겨진 어린이나 청소년은 학교에서 담임교사나 상담교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집중할 수 없거나 뒤처질 수 있으며, 생일이나 성탄 혹은 기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특히 더 힘들어 할 수 있다. 힘들어하는 행동들은 지극히 정상적이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좋다. 같은 반 학생이 자살했다면 친구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도록 한다.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도 필요하다. 심리상담이나 정신치료에 대한 의료적 지원은 물론 부모를 잃고 남은 어린 자녀에게는 법률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경찰서는 첫 번째 조사과정에서 따뜻하게 배려하고, 지원기관과 빠르게 연결해 줌으로써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종교기관은 드러나지 않는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데 가장 좋은 안식처가 될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새 살이 돋아나올 즈음, 세상 속에서 웃으며 손 내밀어 또 다른 남은 자의 고통을 헤아려주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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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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