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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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④ 교각살우 : 줄기세포 활성화 정책과 인권의 조화

누구를 위한 ''허가절차 간소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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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성체 또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활용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인간 생명 존엄성에 대한 도전들을 함께 검토해봤다. 그런데 최근들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줄기세포 치료제가 연이어 허가를 받음으로써 관련 학계와 산업계가 출렁대고 있다.

 정부에서도 줄기세포가 의학 및 경제발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이를 적극 지원하려는 정책들을 개발하고 있다.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한국 줄기세포의 산업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활성화하고 동시에 국제 표준에 맞게 각종 허가절차를 손쉽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힌바 있다. 더불어 줄기세포 치료제의 허가과정을 쉽게 하려는 각종 입법안들도 국회에 속속 제출되고 있다.

 물론, 줄기세포 연구를 활성화해서 차세대 국가 경쟁력의 요체로 삼겠다는 것은 국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산업경쟁력을 위해 그 허가절차를 손쉽게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줄기세포와 관련된 허가절차를 간소화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기업이 치료제를 개발하면 상품으로서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시판허가라 한다. 정부가 이 허가를 내주려면 그 치료제가 과연 안전한지, 또 객관적 치료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한다. 이것은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흔히 세 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즉, 초기 단계(임상 1상 또는 2상)에서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투여했을 때 감염이나 면역반응, 투여량 등을 조사하지만 이 단계는 예비적 시험에 해당하는 것일 뿐, 치료제로서의 효과를 엄밀하게 검증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결정적 검증은 해당 치료제를 투여 받은 다수의 환자집단을 대상으로 통계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의미 있는 치료효과가 나타났는지, 또 장기적으로 관찰해도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조사해 봐야 한다. 이 과정을 임상 3상 시험이라고 한다. 결국 이러한 3상 시험은 국가가 해당 치료제를 구매해도 좋다고 공식 인정해 주려는 근거를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보면, 희귀난치성질환의 경우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임상 1상이나 연구자 임상시험만 하고 시판허가를 내주자는 법안과, 자가유래 줄기세포의 경우 임상 3상 시험을 면제해주고 시판허가를 내주자는 내용들이 있다. 하나같이 결정적 검증과정인 임상 3상 시험을 거치지 않고 시판허가를 내주자는 것이다.

 만일 이런 제도가 통과하면 어떻게 될까? 국가는 정작 충분한 검증을 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허가 도장을 찍지만, 소비자들은 식약청이 허가를 했으니 안전성과 치료효과를 국가가 보장해준 것으로 알고, 비싼 돈을 들여 구매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지난해 말 학계, 산업계, 언론계, 시민단체, 정부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허가절차 간소화에 관한 대규모 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에서 토론자들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정부가 줄기세포에 대한 시판허가를 내줄 때 산업적 이해관계를 위해 소비자의 입장에서 공인된 효과를 검증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허가절차 간소화에 대해 업계조차도 반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국의 줄기세포 허가 절차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해야 그 관문을 통과한 자사제품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에 이런 과정을 느슨하게 해놓으면 국제적 신뢰도가 떨어져 국제적 경쟁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줄기세포 기술개발을 위한 의욕은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줄기세포 치료제가 안전한지, 환자들이 돈을 지불할 만한 치료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고유기능이며, 국민에 대한 의무여서 선진국들은 차분한 검증과정을 지키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지의 줄기세포 치료제를 검증하는 당국자들도 어떠한 상업적 이익보다 `환자`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렇게 인권 차원에서 환자 이익을 고려하느라 철저하게 검증하기에 허가 과정의 제도적 간소화를 선진국들이 `못한다`고 보기 보다는 `그렇게는 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 농부가 소의 뿔이 약간 삐뚤어진 것을 고치려 들다가 소를 죽이고 말았다(교각살우;矯角殺牛)는 이야기가 있다. 줄기세포를 활성화하려는 가운데서도 우리가 정작 잃지 말아야 하는 인권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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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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