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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성경 주해] (110) 요한 복음 (6) 나날의 더러워짐과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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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정화되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발 씻음은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며 동시에 정화가 말씀을 통하여 온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깨끗하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의 발을 씻으실까요? 우리가 겸손해지도록 가르치시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몸의 다른 부분이 아니라 제일 천한 부분을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깨끗한 이’라는 말 대신 ‘목욕을 한 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죄가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고 저주의 글귀가 아직 남아 있고 … 구원받고 성령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지지 않은 이들이 깨끗합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을 ‘깨끗하다’고 하실까요? ‘깨끗하다’는 말을 그들이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이는 ‘너희는 빛을 받아들이고 오류에서 벗어난 점에서 깨끗하다’는 뜻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요한 복음 강해』 70,2).

‘발’은 정화가 필요한 나날이 묻는 더러움을 상징한다

존자 베다에 의하면, 정화는 나날이 거듭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발이 이 세상의 오물과 쓰레기를 밟음에 따라 우리가 나날이 더러움을 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발 씻음이 죄의 용서를 나타내며, 세례 때에 죄가 용서되지만 현세를 사는 모든 이가 저지르는, 나날의 죄 되는 행동도 당신께서 주시는 나날의 은총으로 정화됨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 우리의 발은 땅에 사는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나타내며, 게으르고 나태한 우리에게 그것은 날마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고한 삶을 사는 훌륭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더없이 사랑하는 거룩한 묵상에서 한눈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1요한 1,8). … 세례반에서 씻기고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다시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똑같은 식으로 다시 씻길 수도 없습니다. 그는 세상살이에서 나날이 묻히는 더러움을 자신의 구원자께 나날이 용서받음으로써 닦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 걱정 때문에 그의 마음에 붙어 있는 것들만 제외하면, 그의 온몸과 모든 행위는 깨끗합니다. 나날의 더러워짐과 정화를 위해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존자 베다 『복음서 강해』 2,5).

뱀은 발을 공격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창세기가 예언한, 발을 공격하는 뱀의 독을 씻어 주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례로 모든 잘못이 씻깁니다. 죄가 물러나갑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발을 씻는 것은 아담이 악마에게 넘어가(창세 3,1-6.15 참조) 독이 그의 발에 쏟아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뱀이 나중에라도 여러분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그가 숨어서 기다리는 부분에 성화라는 매우 강력한 도움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뱀의 독을 씻어낼 수 있도록 발을 씻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겸손에도 도움이 됩니다. 복종의 행위로 볼 때는 업신여기던 것을 신비로 바라볼 때는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암브로시우스 『성사론』 3,1,7).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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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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