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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성경 주해] (114) 요한 복음 (10) 토마스 주님 상처 다시 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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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4-25).

토마스는 우리를 위해 그 자리에 없었다

대 그레고리우스는, 토마스의 돌아옴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었다고 말한다. 토마스가 품었던 의심이 우리의 믿음이 확고해지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정 제자가 그 자리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의심하는 제자가 스승의 육신에 난 상처를 만짐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불신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거룩한 자비가 안배한 일입니다. 토마스의 불신은 다른 제자들의 믿음보다 우리의 믿음에 유익합니다. 그가 주님의 상처를 만짐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의심 없이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40편) 26).

오래된 상처를 다시 헤집다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는, 불신에 가득 찬 토마스의 행동에 담긴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불경한 손이 입힌 상처를 왜 충실한 제자의 손이 이런 식으로 다시 헤집는 것일까요? 부정한 군사가 창으로 찌른 옆구리를 왜 충실한 추종자의 손이 다시 열려고 할까요? 박해자의 분노가 가한 고통을 왜 종의 잔인한 호기심이 다시 가하려 할까요? 왜 제자가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그분의 아픔으로,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그분의 고통으로, 그분께서 천상의 의사임을 그분의 상처로 입증하고자 이다지 열심일까요? … 토마스여, 어째서 저 혼자 영리한 그대만이 믿음을 위한 증거로 상처를 요구하는가? … 호기심이 그대의 믿음에 어떤 위험을 가져왔겠는가? 그들의 잔인함을 밖으로 드러나게 한 그분의 내장을 그대가 손으로 만져 보지 않으면 그분 부활의 증거도 그분 헌신의 표시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 토마스는 반신반의하는 자기 마음과 더불어 믿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 주님께서 당신의 상처를 그대로 두신 유일한 이유는 당신 부활의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설교집』 84,8).

꼼꼼한 토마스

오리게네스는, 다른 사도들도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싶어 했지만 오직 토마스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구체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토마스는 매우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말에서도 이 점이 드러납니다. 그는 주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은 듯합니다. 마태오가 말하는 것(마태 24,5 참조) 같은 허깨비를 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더욱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본 다른 사도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루카 24,37)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루카 24,39)고 하셨습니다(오리게네스 『요한 복음 단편』 106).


노성기 신부 (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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