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평화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집''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글=성민선

처음 도서관에 간 것은 남편이 해외건설 수주를 위해 출장을 떠났을 때였다. 마침 아이들도 방학을 맞아 어학연수를 떠났으므로 나는 모처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집에 혼자 있기가 무료해 무작정 집을 나온 날, 단지 앞 버스 정류장에 도서관이라고 로고가 찍힌 하얀 버스가 보였다. 늦은 밤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서 있던 모습이 떠올라 나는 덥석 차에 올랐다. 구경삼아 간 그곳엔 오전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직장에서 은퇴한 노인들이거나 아직 이른 나이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침 소리와 위장기능이 약해져 자꾸 트림을 하는 소리, 부스럭거리며 신문을 넘기거나 크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까지 때로 그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대합실처럼 부산하고 시끄러웠다. 이층 열람실로 올라가자 공무원 기출문제집, 공인중개사, 토익900완성 같은 책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 있었다. 나는 서가에서 책을 꺼내 창가에 있는 구석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이미 한 남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낡은 감색 점퍼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그는 초라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사색적인 면모를 풍겼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흰 가운에 검은 장화를 신은 조선족 여자들이 잰 손놀림으로 식판에 음식을 담았고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곳엔 공원에서 보도블록을 깔거나 인근의 재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있었다.

 나는 줄을 서려다 말고 그곳을 나와 거리를 돌아 다녔다. 갈현동사무소를 지나 수자원공사 쪽으로 걸어가는데 노란색 건물이 휑하니 서 있는 게 보였다. 지난 경제 환란 때 건설사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 병원건물이었다. 시에선 그곳을 살리기 위해 장례식장을 겸한 노인병원을 추진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벌써 십 년 넘게 폐허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십여 층이 훨씬 넘어 보이는 건물이 잊혀진 유적처럼 우뚝 서 있었다. 윙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따라 나는 무심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은 입구가 봉쇄된 채 주위에 펜스가 쳐 있었다. 어두컴컴한 내부, 유리창 없이 뻥 뚫린 창문들을 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훈아…

 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동생을 부르던 내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토류벽이 붕괴되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있었지만 나는 그 뒤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야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올라갔다. 그 안 어딘가에 동생이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처럼 좁게 난 길을 따라 나는 건물 뒤편으로 다가갔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놀라 뒷걸음질 치며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텅 빈 건물을 울리며 짖고 있는 개 소리가 점점 크게 내 심장을 조이며 귓전으로 들려왔다.

 그날 이후 나는 계속 거리를 돌아다녔다. 도저히 혼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과천역과 정부청사 역 사이를 길게 가로지르는 중앙공원엔 양재천이 흐른다. 도시 면적의 구십 퍼센트가 그린벨트로 묶인 이곳은 인구 칠만의 작은 도시이다. 처음 이곳에 둥지를 틀었을 때 남편과 나는 십삼 평 전세부터 시작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경제 한파로 남편 회사가 쓰러지고 어렵게 마련한 집까지 팔아야 했지만, 경제위기가 끝나면서 시작된 건설 붐으로 남편은 재기할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를 넘긴 후 남편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동생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동생을 본 것은 온 나라가 경제 환란으로 뒤덮였을 때였다. 저녁이 이슥할 무렵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온 동생은 몹시 지쳐 보였다.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커다란 가방을 들고 서있던 동생은 개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동생에게 따뜻한 밥을 해먹이고 자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실업으로 인해 잔뜩 예민해져 있던 남편은 누구도 집에 들이는 걸 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피폐한 살림살이를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동생이 나를 보며 말했다.
 누나, 들어가. 매형이 기다리잖아.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동생이 데려온 개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누나가 좀 맡아줘.

 나는 얼떨결에 개를 받아 안았다. 그 개는 내가 결혼하면서 혼자 남게 된 동생이 주워와 키운 유기견이었다. 여기저기 부스럼이 나고 병색이 완연한 개가 뒤돌아서는 동생을 향해 발버둥을 치며 짖어댔다. 하지만 나는 그 개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깟 똥개새끼 이제 그만 내다버려. 남편은 집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견디지 못했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느라 개까지 돌볼 여력은 없었다. 개가 짖을 때마다 남편은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었고 나는 숨을 죽인 채 아이를 감싸 안곤 했다. 어느 날 개가 사라진 걸 알았지만 나는 일부러 개를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동생을 위해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마지막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부청사 앞 잔디마당엔 오늘도 시위대가 모여 있다. 의약분업, 사학법, 연금법 등 주요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이곳은 늘 시위대로 붐빈다. 정리해고 철폐하고 민주노조 인정하라. 악질자본 몰아내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현수막의 붉은 글씨가 바람에 흔들린다. 청사와 마주보고 있는 C그룹의 노조는 일 년이 넘도록 농성을 하고 있지만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십 년 전에도, 이십 년 전에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 모습을 대하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세상은 이미 변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문 밖에서 외롭게 목청을 높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주로 어울리는 사람들은 교육은 물론 부동산, 패션, 웰빙까지 다양한 정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한때 그들은 통장을 중심으로 집값을 담합하고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반대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청사의 이전 계획이 발표된 후에도 이곳의 집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경제위기가 끝날 무렵 남편이 구입한 집은 해마다 올라 지금은 무려 여섯 배나 뛰었다. 처음 렉서스를 샀을 때 남편은 말했다.

 도요타의 최고급 승용차 브랜드야. 상위 일 퍼센트에 속해야만 탈 수 있는 차라고. 빌게이츠도 렉서스를 샀다니까!

 그러고 보면 남편은 변화된 세상에 잘 적응한 케이스였다. 그는 매일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경제신문을 읽고 식사를 하며 씨엔엔이나 비비씨를 듣는다. 외고를 준비하는 딸 역시 남편과 함께 뉴스를 들으며 귀를 단련시킨다. 세계화시대라는 것을 나는 아침마다 거실에서 느끼곤 한다.
 
   다시 도서관에 간 것은 추위가 제법 기승을 부리며 차갑게 바람이 몰아쳤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그곳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신문이나 잡지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서가에서 이런 저런 책을 찾아 꺼내 읽곤 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1-02-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시편 70장 8절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자, 저의 입은 온종일 주님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