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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춘문예] 유아동화부문 가작-담쟁이와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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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문자
그림=권소현

   "아휴, 목말라, 못 만난 지 벌써 2주일도 넘었네."
 가느다란 아기 담쟁이 넝쿨 하나가 종알거리며 숨을 몰아쉽니다.
 "누구를?"
 옆에 있던 다른 담쟁이 잎이 물어봅니다.
 "비! 물먹고 싶어 죽겠어."
 커다란 트럭이 엉덩이에서 뿡, 방귀소리와 함께 지독한 매연을 내뿜고 도망갑니다.
 "콜록 콜록."
 어디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구니?"
 아기 담쟁이는 이리 저리 옆을 둘러보았습니다.
 "콜록 콜록."
 "누구지?"
 가만히 들어보니 아래쪽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너 뭐야?"
 아기 담쟁이가 소리 나는 곳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작은 병아리 한 마리가 보입니다. 반쯤 감긴 눈꺼풀이 푸르스름합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지만 자꾸 몸이 흔들거립니다.
 "너 언제 왔어? 삐약, 소리도 못 들었는데."
 "아까 어떤 아이가 날 슬쩍 버렸어."
 "뭐? 버려? 왜?"
 "학교 앞에서 500원 주고 날 샀는데 엄마한테 혼났거든. 콜록 콜록!"
 병아리는 말하다 말고 기침을 계속 합니다.
 "너 감기 걸렸니?"
 "몰라.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아, 목말라. 물먹고 싶어."
 병아리가 감기려는 눈을 뜨려고 애를 씁니다. 밤새도록 끙끙 앓는 소리가 아기 담쟁이 귀에 들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기 담쟁이가 일어나보니 병아리가 옆으로 누워있습니다. 위로 들려진 다리가 자꾸만 가늘게 떨립니다.
 "야, 병아리야. 괜찮니?"
 "……."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흐으윽 캑, 뱉어놓은 가래침이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갑니다. 아기 담쟁이는 병아리가 걱정됐지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누가 병아리에게 물 좀 주세요!"
 아기 담쟁이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참. 어떻게 하지?"
 아기 담쟁이는 자신의 잎 중에서 제일 싱싱한 걸 하나 흔들어 떨어뜨렸습니다.
 "병아리야, 그거라도 먹어봐."
 하지만 병아리는 누운 채 가만히 있습니다.
 "내 잎이 맛있지는 않겠지만 물은 조금 들어있을 거야. 먹어봐."
 "……."
 "어떡해!"
 여전히 대답 없는 병아리를 보며 아기 담쟁이가 눈물을 찔끔, 흘립니다. 그때, 한숨을 푹푹 쉬며 어떤 아저씨가 지나갑니다.
 "아저씨, 병아리가 많이 아파요."
 아기 담쟁이가 소리쳤지만, 아저씨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저녁 반찬거리와 커다란 참외 봉지를 양손에 나눠 든 아주머니가 지나갑니다.
 "아줌마, 병아리에게 참외 한쪽만 주세요!"
 아기 담쟁이가 또 소리쳤지만 아줌마는 벌써 저만큼 멀어집니다. 반짝이가 달린 예쁜 옷을 입은 할머니가 길을 가다 화단 옆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요 할머니, 보이시죠? 병아리가 죽어가요."
 하지만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으로 한 쪽 코를 막더니 핑, 코를 풀고는 휑하니 가버립니다.
 "아이, 더러워!"
 콧물까지 뒤집어쓴 아기 담쟁이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때, 유치원 가방을 맨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갑니다.

 
 "엄마, 병아리."
 "어디?"
 엄마가 걸음을 멈춥니다.
 "저기, 화단 풀 사이에."
 "병아리가 왜 저런 곳에 있지?"
 엄마가 얼굴을 살짝 찌푸립니다.
 "우리가 데려다 키우자."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흔들며 엄마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안 돼. 금방 죽을 거야. 지금도 비실비실 하네."
 "그러니까 데려 가자."
 아이가 엄마 손을 더 힘차게 흔듭니다.
 "안 된다니까."
 엄마가 조금 화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병아리 죽잖아."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며 엄마를 다시 올려다봅니다.
 "시끄러워, 빨리 와. 학원시간 늦었어."
 엄마는 아이 손목을 꽉 잡고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엄마아, 응? 엄마아……."
 아이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엄마 손을 잡아당깁니다.
 "너 자꾸 떼쓰면 약속한 게임CD 안 사준다. 게임CD가 좋아? 병아리가 좋아?"
 "그래도……."
 엄마 손에 끌려가면서 아이가 자꾸만 뒤돌아봅니다. 병아리의 눈동자에 아이의 뒷모습이 작은 콩알만 하게 찍힙니다.
 "병아리야, 정신 차려 봐. 어서 물 먹어."
 혼자 돌아온 아이는 종이컵에 물을 담아왔습니다. 병아리 부리를 벌리더니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물방울이 입안에 떨어지게 해줍니다. 병아리가 감겼던 눈을 반쯤 뜨고 아이를 봅니다.
 "병아리야, 내가 돌봐 줄게. 가자."
 아이는 작은 종이 상자 안에 깔린 손수건 위에 병아리를 올려놓더니 두 손으로 상자를 감싸 쥐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병아리야, 안녕! 잘 가. 꼭 건강해야 돼! 고맙다. 잘 가!" 아기 담쟁이가 멀어지는 아이와 병아리에게 작은 잎을 흔들며 인사합니다.
 하늘에서 토도독,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집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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