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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특집] 숫자로 본 김수환 추기경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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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잠든 곁에는 한 송이의 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대교구 조의금도 받지 않았다. 대신 그의 곁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기도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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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이 남긴 메시지는 ‘사랑하라’ 하나.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었던 그는 한국 최초 시국 담화문 선포, 한국 최초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미사 등 ‘최초’로 많은 일들을 행한 선구자였다. 그의 선종을 취재하기 위한 보도진을 위해 명동성당에는 111년 만에 최초로 프레스센터가 설치됐으며 장례위원회는 총 271개의 프레스카드를 발급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하고 그가 가져간 것은 나무 묵주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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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눈을 기증하고 떠났다. 말 뿐인 사랑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 각막을 기증 받을 이에게 취재진이 몰릴 것을 우려해 기증받을 이의 신변을 철저히 비밀로 하라고 말했다. 끝까지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떠난 그는 진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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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사랑의 여운은 길었다. 2월 17일 그를 추모하는 조문객 행렬이 3km에 달했다. 명동대성당 입구에서 시작된 행렬은 들머리, 퇴계로를 거쳐 명동역까지 이어졌다.

4.6

1969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그는 선종한 2009년 2월 16일을 기점으로 추기경으로서의 40년 삶을 마치고 4.6㎡ 크기의 땅에 잠들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안동, 김천을 거쳐 독일, 마산, 서울, 로마 등 전 세계에 사랑을 심었던 그는 4.6㎡라는 자그마한 땅에서 편안한 잠을 자고 있다.

1400

이 기간 명동대성당 성물방에서 팔린 김수환 추기경 관련 서적은 1400여권에 달했다. 많은 추모객들이 그의 삶과 신앙이 담긴 책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따랐다.

수백만

김수환 추기경을 그리는 추모객은 서울에서만 38만 명을 훌쩍 넘겼다. 조문객은 추위와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5시간을 기다려 연도를 바치고 미사를 올렸다. 전주, 대구 등 지방에서 올라온 조문객도 찾아볼 수 있었다. 명동대성당 성전 안에는 ‘추기경 스테파노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아 2월 16일 밤부터 19일 밤 12시까지 총 55회의 연도, 장례미사를 포함해 총 172회의 추도미사가 봉헌됐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지난 한 주일간 단 한건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뭇사람들은 이를 두고 ‘명동의 기적’, ‘추기경 신드롬’이라 불렀다. 전국 각 교구의 본당에서 이뤄진 추모기도와 미사에 참례한 신자를 종합할 경우 그 수는 수백만에 이른다.

임양미 기자 sophia@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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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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