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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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 어록-이 시대의 예언자

힘겨운 시대에 정의 사랑 평화의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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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직하던 1968년부터 1998년까지 30년은 한마디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특히 1970~80년대는 급속한 산업화를 통한 유례 없는 경제 성장이라는 빛과 함께 독재와 인권 탄압이라는 어둠이 공존하는 시절로 기록된다. 빛보다는 어둠이 더 크게 다가왔던 이 시기에 김 추기경은 독재와 불의에 맞서 쓴 소리 곧은 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김 추기경은 성명서나 강론 등을 통해 우리 사회와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정의와 평화에 목말라하는 국민들의 갈증을 씻어줬다.
 현대사 고비고비마다 메아리쳤던 김 추기경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그의 어록집 중에서 중요한 몇 개를 선별했다.

▨1971년 성탄 메시지 `빛을 찾고 있는 사람들`

1971년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 동의 없이 긴급 조치를 발동해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국가 보위에 관한 비상 대권`을 주는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국회에 으름장을 놓았다. 독재를 강화하려는 의도였다. 김 추기경은 성탄 자정 미사에서 이를 크게 질타했고, 텔레비전을 통해 미사 중계를 시청하다가 화가난 박 대통령은 생방송 중지 명령을 내렸다.

 "…정부나 교회나 사회 지도층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양심의 외침을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란 양자 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1972년 8ㆍ15 시국 담화문 `난국 수습을 위한 제언`

 7ㆍ4 남북 공동성명은 남북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쾌거라는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남북 양측 지도자들이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깔아놓은 포석일 뿐이라는 우려의 시각을 낳기도 했다. 유신헌법이 선포되기 얼마 전 일이다.

 "…우리는 7ㆍ4 공동성명이 영구히 전쟁 수단을 포기하고 대화로써 조국의 통일을 달성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남북의 정치가들이 이 약속을 성실히 지키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이것을 평화 위장과 전쟁 준비의 수단이나 권력 정치의 기만 전술로 이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민족과 더불어 엄숙히 경고한다…"

▨1973년 12월 16일 YMCA 강연 `교회가 현실 참여를 해야 하는 이유`

 유신헌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난 시기로, 감히 정권에 맞선다는 것은 상
상조차 하기 힘든 때였다. 헌법 개정을 입에 담기만 해도 잡혀갈 수 있었던 이때 김 추기경은 헌법 개정과 민주 체제로 복귀를 촉구했다.

 "…이른바 10월 유신 체제로 정부는 민권과 정상적 민주 헌정 질서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일방적으로 국민의 추종만을 강요해 왔고 또한 국민을 정치와 경제의 수단으로 격하시켜 왔습니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익, 때로는 기본 인권까지도 잘 보호해 주지 않고 오히려 부당하게 억제한다면 그런 정부를 어느 국민이 신임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자칫 잘못되면 이 나라를 파국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었던 학원 사태 등은 국민이 지닌 정부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의 표명의 단면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국정 참여를 제도적으로 소외시키고 있는 현재 체제를 지양하고 현재의 헌법을 개정하여 3권 분립과 평화적 정권 교체가 제도적으로 확립된 주권 재민의 올바른 민주 체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을 정부는 반체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분명히 민주 공화국입니다. 민주 공화국 체제가 변질된 민주 체제를 정상화시키라는 것입니다.…"

▨1979년 시국에 관한 성명서 `국민의 기본권 존중`

 유신 말기인 1979년은 민주인사에 탄압이 극에 달했던 해다. 김 추기경은 이들에 대한 즉각적 탄압 중지를 요청했다.

 "국민의 기본권이 공권력에 의해 존중되어야 하며, 모든 국민은 누구도 소외감 없이 공권력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야 한다. 이와 아울러 근자 종교계, 언론계, 지식인, 학생들의 비판을 반정부 운동으로만 단정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요청 역시 근본적으로는 애국 충정에서 우러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부는 좀 더 거시적 안목에서 무엇보다도 국민총화를 위해 이같은 비판의 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 이들에 대한 일체의 탄압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이런 탄압은 오히려 국민 총화를 해치고, 더욱 지속되는 날에는 국민의 정신을 심히 위축시켜 국가 안보와 국력의 약화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1979년 11월 2일 박정희 대통령 추모미사 강론

 독재자였던 박 대통령을 추모하는 미사를 집전한다고 해서 당시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고인의 허물과 함께 우리 민족에 기여한 공로를 기억하면서 하느님 품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했다. 대통령 역시 하느님 앞에서는 불쌍한 한마리 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생전에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민족 중흥을 위한 큰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이루신 공적이 크고 파란 만장한 생애를 사셨으며, 최후가 비극적이었지만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하늘 나라에서 고인이 평안히 쉬게 해주시길 충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분은 정사를 담당하신 이후 국토 구석구석 국민 생활 속속들이 관심을 가지셨고 실로 삼천리 방방곡곡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들을 홀로 직접 처리하려는 것이 그분에게는 오히려 큰 부담을 안겨 주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1980년 봄 시국에 관한 담화문 `민족적 위기 극복`

 5ㆍ18 광주사태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겪었지만 그 누구도 선뜻 비극의 불씨를 지핀 신군부에 대항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김 추기경은 유혈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 엄벌과 민주 헌정 확립을 강력히 요구했다.

 "…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군에 의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진압이 도에 넘침으로써 군경을 포함하여 학생과 시민 등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데 대해 정부는 깊이 사과하고 그 같은 엄청난 유혈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를 정부는 엄단해야 합니다. 이것을 군부는 치욕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혈 사태를 빚어 내고 민족적 단합을 파괴함으로써 그 자체로써 공산화의 위험을 더 크게 만든 결과를 감안한다면 국토 방위의 신성한 사명을 첫 임무로 삼고 있는 군이 오히려 자진해서 취해야 할 조처라고 믿습니다."

▨1987년 1월 26일 고 박종철씨 추모미사 강론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은 막바지로 접어든 제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이는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됐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실질적 민주화의 분기점이 된 것이다.

 "…인권을 옹호하고 존중해야 할 공권력에 의하여 오히려 인권이 말할 수 없이 거듭거듭 유린되고, 사람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일 때 우리는 공권력 행사의 최고 책임을 지고 있는 이 정권의 도덕성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그의 희생이 우리의 정의로운 민주 회복의 도정에 승리의 분기점이 되고 저력이 되어 줄 수 있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통해 억울하게 현재 투옥 중에 있는 모든 양심인들의 석방을 바랍니다…"

▨1997년 2월 12일 시국에 관한 성명서 `과오를 씻고 밝은 미래로`

 1997년 1월 재계 서열 14위이던 한보그룹의 부도는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가 얽혀 일어난 것으로, 건국 이후 최대 금융부정 사건이었다. 이해 11월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는데, 한보사태는 IMF 구제금융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구조적 부정 부패와 정경 유착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한보 사태는 특별히 현 정부의 통치 행태에 대한 국민의 깊은 실망 및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 그리고 최근의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과도 한데 맞물려 우리 국민을 분노와 허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야당 정치인에게도 고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낡은 정치 관행과 행태라는 점에서 볼 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야당도 여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우리 인식입니다. 여야는 다같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전투구식 소모적 정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낡은 정치 행태와 단절하고 새로운 정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줌으로써 위기에 있는 나라와 경제를 구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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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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