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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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하느님과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내어주신 분

평화방송 TV 김수환 추기경 회고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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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방송 TV는 17일과 18일 김수환 추기경을 회고하는 특별대담을 마련, 김 추기경을 가까이에서 만나온 사람들을 통해 그의 사랑과 고뇌 등 인간적 면모를 들어보았다.
 17일 대담에는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와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홍순 회장이, 18일 대담에는 김 추기경 전 비서 정민수(도곡동본당 주임) 신부와 가톨릭신앙생활연구 신치구 전 소장, 명동본당 박광순 전 총회장,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 권경수 회장이 출연했다. 평화방송 누리방(www.pbc.co.kr)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다음은 두 차례 특별대담 요약.


 
▲ 평화방송 특별대담에 출연한 강우일 주교와 한홍순 회장이 김수환 추기경과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주교회이 의장 강우일 주교

 이미 모든 분이 다 아시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은 무척 인간적인 분이셨고 누구나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굉장히 친밀감 있는 분이셨습니다. 격식을 갖추는 것을 싫어하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신 것 같습니다.

 서울대교구가 걸어온 파란만장한 길에서 추기경님은 사제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시면서 한 번도 근엄한 조직의 사령관 이미지를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성직자를 만나시면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밤늦게라도 한참을 두고서 이야기를 듣고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아들이 아무리 사고를 쳐도 아버지로서 다 받아주시고 함께 고민하시고 어떻게 하면 함께 풀어갈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분이었지, 상사로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이미지는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교구장으로 일하지만 사실 그렇게 대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우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주교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부터 빨리 해결해야 하는 중압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분은 행정가로서 결정을 내리는데 서두르지 않고 답답해 보일 정도로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사람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에 인내하고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투병 중에 추기경님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하느님께 봉헌하시려는 듯한 투병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에게 지난 세월 동안 덧씌워졌던 명예나 영광 모두를 깨끗이 벗어버리고 그냥 하느님 앞에서 `인간 김수환`으로 겸손되이 나아가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겸손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대단한 것이 아니며, 하느님 대전 앞에 가면 하느님 자비로만이 살릴 수 있는, 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천주교평신도협의회 한홍순 회장

 김수환 추기경님은 하느님께서 우리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민족에게 주신 커다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기경님은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1994년도에 서울에서 아시아평신도대회를 열었을 때 일입니다. 로마에서 평신도평의회의장 에드와르도 피로니오 추기경이 오셨습니다. 마지막 날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송별회를 하며 추기경님 보고 춤을 추시라고 권했더니 정말 춤을 추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피로니오 추기경님께서는 "아니, 나는 근엄한 분인 줄 알았는데 저런 면이 있으시느냐"면서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리곤 로마에 돌아가셔서 그 일을 소문내셨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은 평신도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 하셨습니다. 평신도들이 말씀을 드리면 메모도 하시고, 늘 격려해주시고, 평신도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추기경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갖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또 우리 것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굉장히 강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1985년 필리핀 마닐라에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회의가 열렸는데, 추기경님이 공동집전한 미사 끝에 우리나라 교회에도 우리 성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김 추기경 전 비서 정민수(도곡동본당 주임) 신부

 추기경님은 수단을 입으시고 행사에 참석하실 때나 사복을 입고 사람들 만나실 때나 늘 똑같은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유머감각도 뛰어나셨는데 재밌는 얘기를 들으시면 꼭 식사자리에서 말씀하시면서 기억해 두곤 하셨습니다.

 성명을 내거나 정부를 향해 말씀하실 때도 국장 신부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곤 하셨습니다. 늘 어려움에 봉착해서 고뇌가 많으셨기에 때론 한적한 곳을 찾아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셨습니다.

 우연히 방에 들어갔다가 아래, 위 틀니가 컵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틀니를 사용하시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실 때 얼마나 어금니를 물으셨으면 치아가 다 상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수많은 고뇌 끝에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말씀, 행동들이 나오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내용이지만 후일담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큰 어려움 속에서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이 시대의 등불 역할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추기경님은 당신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세상에 영향 끼치는 것을 아셨기에 담배도 테니스도 다 끊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한국교회와 우리나라를 생각하시는 마음은 똑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 신치구 전 소장
 추기경님의 나라를 위한 진정한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추기경님 허락을 받고 책을 냈습니다. 하지만 추기경님은 간단히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몇 번씩 "한번 생각해보지요, 그만두면 안 되겠어요?"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기경님 개인의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민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은퇴 후에서야 `돌아가시면 자료를 얻을 수 없다`고 설득해 18권의 전집을 내게 됐습니다.

 책을 내면서 이분은 정말 사명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구나 느꼈습니다. 1년 평균 130회 가량 강론을 하셨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강론이 견진성사 강론으로 30번 가량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추기경님은 똑같은 견진성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반드시 전부 손수 다르게 쓰셨습니다. 그 당시 확인하기로 총 4500건 정도 됐는데, 90 이상을 기록으로 남겨두신 것을 보고 정말 사명감이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느꼈습니다.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 권경수 회장

 재작년에 바자를 할 때 "추기경님께 뭐 갖고 계신 것 없으세요?"하고 여쭤봤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한 수녀님께 "뒤져보고 있는 것은 다 주라"고 말



가톨릭평화신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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