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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27) 오후 여섯시의 배구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고 딱 맞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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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해가 저 멀리 구름 너머로 기울 무렵이면 아이들이 배구공을 들고 저를 찾아옵니다. 성당마당에 있는 배구 코트에서 배구를 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굳이 저에게 공을 들고 오는 이유는 공에 바람을 넣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모든 공이 다 그런 건지, 아니면 이 공에 아주 작은 구멍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공은 매일 바람이 빠진 채로 제게 건네진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람 빠진 공을 들고 아이들이 왔고 저는 그 공에 바람을 넣어줍니다.

이곳 아이들은 배구를 좋아합니다. 물론 축구도 좋아하지요. 음, 아마도 이들이 축구와 배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축구와 배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에 야구장이나 농구장은 없으니까요. 다시 말하면 이 아이들이 접해본 것은 축구와 배구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접해본 것이 이것이고,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 이것뿐인 거죠. 아, 톤즈에는 농구장이 있는데 그곳의 아이들은 농구도 축구와 배구만큼 좋아할 것 같네요.

저는 배구가 이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그리고 딱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 아이들은 키가 크니까요. 배구를 하는데 큰 키가 도움이 되겠죠. 남자 아이들은 180cm를 넘는 아이들이 과반수고, 여자 아이들도 저보다 큰 아이들이 꽤나 많답니다.

제가 이 아이들에게 배구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배구는 축구나 농구처럼 경기 중에 상대편과 몸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리를 걸거나 밀치고 당기는 반칙을 할 필요가 없는 경기인 것이죠. 어린이들의 작은 싸움이 마을 간 전쟁으로 커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아이들은 매일 이 시간, 어김없이 공을 들고 옵니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만 빼고요. 아이들이 배구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가 아이들에게 배구를 알려줬을까?’ 서브를 받고 공을 올려주고, 올려준 공을 내리쳐 공격하는 모습이 꽤나 그럴듯해 보입니다. 축구는 남자아이들만 하는데 비해 배구는 여자아이들도 함께합니다. 게다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남수단의 괜찮은 미래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아직 아이들하고 배구를 함께해 본적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배구를 하는 시간에 저는 진료소를 운영하거든요. 하지만 곧 해볼 생각입니다. 기회가 되면 아이들에게 배구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정말 재능이 있는 아이들 중에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배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울 수도 있을 테니까요.

7시가 넘었네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해가 지면 하루 일과도 끝이 나지요. 저도 진료소 일을 마치고 사제관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모두에게 평화로운 밤이 되길 기도합니다.
 

 
▲ 아이들이 성당마당에 있는 배구 코트에서 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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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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