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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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28) 벤치 만들기

함께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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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신학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날씨도 선선하니 일하기 좋을 것 같아 신학생들과 함께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할 일은 ‘벤치 만들기’입니다. 성당 옆 나무 아래 벤치가 있었는데 얼마 전 모두 해체를 했거든요. 흰 개미가 벤치의 기둥을 갉아먹어서 주저앉았지요.

글을 이어가기에 앞서 우리 친구 흰개미를 소개할까 합니다. 겉모습은 이름 그대로 하얗습니다. 새끼일 때는 하얗고 투명한 그 빛깔이 참 아름답고, 자라면서 그 색이 약간 누렇게 변해갑니다. 흰개미는 정말 놀랍습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데, 마당에 나무 조각을 놓아두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 밑으로 올라와 바닥부터 갉아먹습니다. 며칠 뒤에 나무 조각을 뒤집어보면 흰개미의 흔적을 반드시 보게 되지요. 흰개미는 나무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합니다.

몇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벤치는 흰개미의 공격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오늘 새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벤치는 만들기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멋진 벤치가 아니고요. 나무 기둥 몇 개를 땅에 세우고 길게 자른 대나무 여러 개를 나란히 붙여 기둥 위에 고정시킨 단순한 모양의 벤치랍니다.

먼저 말루이치와 마볼이 기둥을 세울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저는 나무 주위로 네 개의 벤치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신학생들은 세 개가 낫다고 하네요. 그럼 세 개만 만들자고 하고 저는 다른 신학생들과 함께 기둥으로 쓸 나무와 대나무를 찾으러 갑니다. 나무는 이 친구들이 잘 고릅니다.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나무가 좋고 튼튼한지도 잘 알지요. 대나무도 벤치로 쓸 만한, 길고 굵고 곧은 것으로 골라옵니다.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대나무도 자릅니다. 처음 몇 번 자르는 모습을 보여줬더니 아욤과 까미치 두 신학생이 제법 잘 해내네요.

이제 나무 기둥을 땅에 심고 대나무를 그 위에 고정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마볼이 못질을 하는데 못이 들어가다가 말고 자꾸 휘어지네요. 반면 말루이치는 따닥, 따닥 리듬을 타며 실수 없이 못을 박고 있습니다. 결국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친구가 마볼의 망치를 넘겨받습니다. 도중에 못이 모자라 10파운드어치를 시장에 가서 사오고 곧 완성이 되었습니다. 새 벤치가 생겼습니다. 세모꼴로 이어진 세 개의 벤치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제가 원했던 네모꼴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고 대나무 사이의 틈이 벌어진 곳도 보이고, 대나무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 튀어나오고 들어간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약 한 시간 반 만에 벤치가 완성됐습니다. 저 혼자 했으면 하루 종일 해야 했을 일을 여럿이 힘을 모아 일찍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일을 하는 것, 함께 사는 것,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서로 도우며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음을 배웁니다. 일을 다 끝내고 나니 비가 오네요. 시원한 비를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곳 벤치는 나무 기둥 몇 개를 땅에 세우고 길게 자른 대나무 여러 개를 나란히 붙여 기둥 위에 고정시킨 단순한 모양이다.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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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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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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