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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29) 약속을 지킨 아이

“신부님, 나뭇가지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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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치고 뜨거운 정오의 해를 피해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창문 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자전거 뒤에 땔감으로 쓰는 나뭇가지가 묶여있는 것으로 보아 상처를 치료받으러 온 아이 같았습니다. 진료소를 이용하려면 나뭇가지를 가져와야 하거든요.

무료로 진료를 해주면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안 되고, 그렇다고 돈을 받을 수는 없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라도 주워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료소를 운영하는 시간은 오후 6시. 미안하지만 아이에게 6시에 다시 오라고 이야기를 해주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는 얼마나 더웠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냉정하게 ‘진료 시간은 6시니까 돌아갔다가 다시 오렴’이라고 말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먼저 ‘무슨 일로 왔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자전거에 실린 나무를 가리키며 ‘이거 신부님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동안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 아이가 진료시간을 모르고 찾아와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전날 이미 치료를 받은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전날 치료를 위해 처음 성당에 찾아온 아이였고, 물론 처음이니까 나뭇가지를 가져와야하는지도 몰랐던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나뭇가지를 가져오지 않은 그 아이에게 다음부터는 꼭 나뭇가지를 가져와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던 거고요.

제가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사실 진료소에 수많은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그중 나뭇가지를 가져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다음부터는 꼭 가져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부분 내일 꼭 가져오겠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킨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만난 아이는 달랐습니다. 다음부터 나뭇가지를 가져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자신이 몰라서 가져오지 못했던 나뭇가지를 가져다주기 위해 다음날 일부러 다시 한 번 성당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햇볕이 뜨거운 정오에 말이지요.

이곳에 살면서 하루에도 수차례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하곤 하지만 이처럼 기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종종 나타나 주는 덕분에 힘을 내어 살아갑니다. 그날 이후로 계속 나뭇가지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다음부터 나뭇가지를 가져올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정오에 일부러 찾아와 나뭇가지를 전해준 그 아이와 같은 아이는 아직 만날 수가 없네요.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마음속으로 희망하며 또 하루를 보냅니다.


 
▲ 치료를 위해 처음 성당에 찾아온 아이가 다음날 나뭇가지를 가지고 진료소를 다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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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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