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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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남수단에서 온 편지] (33) 남수단에서 맞는 두 번째 성탄

비좁은 성당 안팎에 모여 간절히 구유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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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제 기억 속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설렘이 있었고, 더 자라서는 성탄 밤 미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어느 집에 모여 밤을 새우며 놀곤 했는데, 그 시간을 기다리는 설렘도 있었습니다.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어떤 기다림, 설렘에 의한 떨림이 제 기억 속의 크리스마스입니다.

남수단에서 맞게 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 작년에는 아강그리알에서 지냈고 올해는 쉐벳에서 지냅니다. 작년에는 남수단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큰 기대와 떨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두 번째여서 조금 덜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또 다른 설렘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기억하는 크리스마스와는 다르게 낮 기온은 40도에 육박하네요. 물론 해가 지면 많이 시원해집니다만 안타깝게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할 순 없습니다.

이곳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탄 밤 미사를 드립니다. 오후 9시 밤 미사가 시작되고, 그 전에 성탄절 특선영화를 7시부터 상영하기로 했습니다. 성탄 특선영화는 ‘벤허’, 이상협 신부의 추천으로 아강그리알과 쉐벳성당에서 동시에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 탄생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큰 별이 이동하는 장면,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가축들과 목동들이 지켜보는 장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경배하는 장면 등 그동안 아이들에게 말로만 설명해왔던 내용들이 화면에 나오니 아이들이 조용히 화면을 바라봅니다.

영화가 끝나고 바로 미사 준비를 합니다. 계획한 대로 진행 되는가 싶더니 중요한 임무를 지닌 몇몇 청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 갔는지 물어보니 저녁 먹으러 집에 갔다고 합니다. 미사시간을 알려줬음에도 제멋대로인 것은 아프리카의 천성인가 봅니다. 덕분에 미사는 좀 늦어졌지만 늦으면 늦는 대로 하는 것이 또 이곳 스타일입니다.

미사 시작과 함께 한 구유 경배. 무려 40분이 걸렸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합니다. 제대 앞으로 나와 아기 예수님 인형에 입을 맞추는데, 그 모습이 참 놀라웠습니다. 모두들 경건한 태도로 경배에 임합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들도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고 들어갑니다. 어떤 아이는 한 번으로는 부족한지 머리에 양 손에 그리고 발에 입을 맞춥니다.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작은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 그리고 창문마다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한 미사가 진행이 됩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로 어수선하긴 하지만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도 아기인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놀랐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퇴장을 하여 밖으로 나와 보니 성당에 들어오지 못하고 마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성당 안에 있던 사람 수보다 서너 배는 더 많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서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내년에는 이 사람들과 함께 새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짧은 기도로 하루를 마칩니다.
 


 
▲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중 경건한 자세로 구유 경배를 하면서 아기 예수 인형에 친구하는 수단 어린이들.
 


※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아프리카 남수단 선교 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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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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