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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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목 이야기] 17.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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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지의 고길동 신부라는 이름으로 지난 12년간 상담편지 1만여 통을 통해 청소년의 내면을 알고 그들 안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듣는 특권을 누려왔다.

 다음은 6년 전에 온 편지다. 내용 중 본인이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을 삭제 수정했다. 이 글을 통해서 청소년의 상황과 그 안에 깃든 아픔을 나누고 싶다. 어떻게 어둠 안에 있는 청소년 친구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길동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중2학년 여학생이에요. 저희 가족은 아빠 엄마 언니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랍니다. 얼마 전부터 엄마와 아빠 사이가 나빠졌어요. 아빠도 계속 밤늦게 들어왔고 엄마도 밤늦게 들어왔어요. 저는 알아요.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을요. 얼마 전 엄마와 아빠가 싸우다가 아빠가 엄마를 발로 차는 것을 봤어요. 신부님 저는 이 장면을 앞으로 영영 머리에서 지울 수 없을 것 같아요. 너무 속상하고 무서워서 막 눈물이 나와요. 하지만 신부님 이 모든 것은 참을 수도 이해할 수도 있어요. 잊으라면 잊을 수도 있고 상처 입지 말라면 입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신부님. 며칠 전에 엄마가 잘 들어오지 않는 제 방에 들어왔어요. 공부하는 제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리아야 너는 혼자서도 잘하고 강하니까 아빠를 따라가라. 언니는 혼자서 잘 못하니까 엄마가 챙겨줘야 되잖아.

 신부님 저는 공부 잘해요. 할 일도 알아서 척척 잘 해요. 제가 왜 공부 열심히 잘하는지 아세요? 언니에게 쏠린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요. 칭찬 받고 싶어서요.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서요. 그래서 공부하다 잠깐 엎드려 있다가도 엄마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아서 공부하곤 했어요. 그런데 엄마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했던 제 행동이 반대로 버림을 받게 했어요.

 신부님 저는 너무 속상하고 눈물이 나와요. 너무 힘들어요. 엄마에게서 버려졌다는 그 느낌을 신부님은 아세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엄마가 같이 살자고 말해 주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런 절 버리고 언니를 선택 했어요. 버림받은 느낌 배신당한 느낌 세상에 홀로 선 느낌. 신부님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든 안하든 이제 그건 제게 큰 문제가 아니에요. 혹 그냥 산다 하더라도 엄마에게 한번 버려진 제 마음은 제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시는 엄마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엄마를 이해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엄마가 저를 믿은 거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속상하고 서운하고 슬퍼요. 그래서 미칠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주위에는 저를 달래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저 어떻게 해야 되나요 네…?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장을 썼다.

  그래 마리아야. 네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알겠구나. 엄마의 인정과 관심을 정말 받고 싶었구나. 그리고 네가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를 알겠구나. (중략) 신부님이 오늘 미사 때 널 위해 기도할게. 그래서 마리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자기를 지켜나갈 수 있게 힘을 달라고 하느님께 청할게.
 
 4년이 지난 후 어느 날 고길동 상담실에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신부님 마리아예요. 기억하세요? 4년 전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위로해 달라고 말했던 그 아이요. 어느 날 문득 신부님이 생각났어요. 그런데 신부님 그 마리아가 지금은 커서 벌써 18살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됐어요. 감사드려요. 진심으로요. 그때 미사 중에 기억해 주신다고 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처음으로 누군가가 저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이었는지 몰라요. 그때 이후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신부님의 답장이 오늘의 제가 있게 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로요.
 
 이 편지를 받고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청소년 사목은 먼 훗날에야 그 결과를 알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고길동 신부라는 캐릭터는 한 개인이 아니고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을.

조재연 신부 홈페이지: http://www.frcho.net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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