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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목 이야기] 19-내가 청소년 사목을 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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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27일. 모두가 잠든 마닐라의 새벽에 잠을 청하다 청하다 책상에 앉았다. 내가 왜 여기에 와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본질인 질문이 내 가슴을 꽂았다.

  나는 왜 청소년 사목에 불리웠는가?

 이것은 오랫동안 내게 끊임없이 계속돼온 질문이었다. 왜 하필이면 청소년인가? 노동자 어린이 노인 장애인 거리의 사람들 고통받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 그 가운데 왜 하필 청소년 사목에 불리웠는가? 대체로 어떤 하나의 성소 부르심을 받을 때는 다 자신의 이력을 토대로 받는 것 같다. 고기잡던 어부들이 사람 낚는 어부로 유대교의 신봉자였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불리웠듯이 말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 누나들과 형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모든 형제들에게 엄하시던 아버지는 내게는 예외셨다. 할머니 쌈짓돈은 내 용돈 창고였고 어머니의 사랑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사랑을 주신 분은 역시 어머니였다.

 내가 6살쯤 되었을 때 나는 신장염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 1년을 매일 흰죽과 병원 간장만 먹곤 했다. 조금만 다른 음식을 먹으면 체하고 바짝바짝 말라갔다(그때 영향으로 지금도 남들에 비해 홀쭉한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밥을 먹었는데 그만 식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진 나는 병원으로 실려갔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잘못하면 내가 죽을 거라는 말이었다. 어린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엄마와 떨어져야 한다는 두려움에 무서웠다. 그래서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어머니는 응 네가 죽으면 부엌 찬장 옆에 유리 상자를 만들어서 밥할 때 보고 설거지할 때 보고 엄마 곁에 둘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나는 엄마의 그 말씀을 들은 후 내가 죽어도 엄마가 나와 함께 있을 거라는 깊은 신뢰감을 얻었고 그 신뢰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사제가 되어 백혈병을 앓는 어린 아들을 둔 어머니를 병원에서 만나게 됐는데 그 어머니는 아들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때 나는 내 어린 시절 어머니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어머니는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러나 병든 아들의 그 아픈 질문에도 어린 아들을 안심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은 하느님 마음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런 사랑을 먹고 자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형제들이 있어도 어머니 사랑을 대신 해줄 수는 없었다. 2년 반 후 아버지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이 시간을 돌이켜보면 난 시커먼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색깔로 치면 뿌연 회색빛이다. 삶에 자신이 없었다. 사춘기와 겹쳐서 마음 안에서 솟아오르는 알지 못할 공허감과 분노 그리고 부모가 없다는 박탈감 지하 전세방에서 그 침침함의 시간들…. 친구들과의 관계도 힘이 없었다. 늘 우울함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보냈는지….

 나의 유일한 해방구는 성당이었다. 난 학교에서는 힘없고 자신감 없는 아이였지만 성당은 내게 힘을 주었다. 내 가정의 상황을 묻지 않았고 우리의 경제적 능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성당 친구들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줬다. 나는 감사하게도 수용적이고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은 신부님 수녀님을 만났다. 나는 많은 시간을 성당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중 한 친구가 나를 평일미사에 초대했다. 눈쌓인 새벽길을 하얀 입김을 뿜으며 걷던 성당 가는 길 여름날 신선한 새벽공기를 맡으며 뛰어가던 그 길… 그 시간들은 내게 한없는 쉼과 충전의 시간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조재연 신부 홈페이지: http://www.frch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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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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