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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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연 신부의 청소년 사목 이야기] 공기놀이하는 소녀들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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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당 건너편에 있는 수녀원에서 피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체조배를 하려고 주일 오후 3시쯤 그 성당을 방문했다. 성당에 들어가 있는데 중학교 1학년 여학생 3-4명이 성당 중앙통로에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들은 10년 20년 30년을 하면서 점점 소리를 키웠고 나는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거기서 이 친구들을 교육시켜야겠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문득 이런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게 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만약 저 아이들에게 공기놀이를 그만 두게 하고 성당은 기도하는 곳이니 조용히 하라고 혹은 다른 곳에 가서 놀라고 한다면 이 아이들은 어디를 갈 수 있는가? 또 그들의 놀이는 무엇으로 바뀔 수 있는가? 화가 난 이 친구들의 마음 쫓겨나고 박탈당한 마음…. 이런 생각이 나를 다시 붙잡아 앉혔다. 그리고 앉아서 지긋이 그 친구들이 하는 공기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었다. 십년 십오년 이십년…그리고 그 놀이를 노래 삼아서 나는 다시 기도할 수 있었다. 그들의 떠드는 소리가 하느님의 음악과 같았다.
 
 한 20분쯤이 흘렀을까? 난 그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안녕?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여기 건너편에 피정 온 신부인데 라고 말을 걸자 그 아이들은 놀란 듯이 공기를 집어 들고 자기들이 너무 했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표시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야 난 너희가 공기놀이를 계속했으면 좋겠어. 왜냐면 너희가 지금 성당에서 하는 공기놀이는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놀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혹시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조금만 작게 했으면 좋겠는데. 성당에서 노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노는 거야 . 그러니까 계속해. 아이들은 안심이 된 듯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속삭이면서 놀이를 계속했다.
 
 그 친구들은 공기놀이를 계속했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넓으신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이들이 여기 성당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는 그리스도. 우리 가톨릭 신앙의 넓음….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와 도덕과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는 규칙마저도 넘어서는 시선임을 깨닫게 됐다. 나는 청소년을 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됐다.
 
 나는 이러한 것을 마닐라에서 공부하는 동안 마누뽀(Manupo)라고 불리는 한 축복 방법에서 보게 됐다. 미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제대 앞으로 달려온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때로는 제대에 올라가서 신부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사제 앞으로 몰려든다. 많은 어른들은 아기를 안고 사제에게 온다. 이 아름다운 장면에서 나는 예수님이 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천국은 이런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르 10 14) 하신 말씀과 더불어 아이들이 그들의 방법으로 예수님께 다가가는데 우리 어른들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그런 넓은 교회 정신과 분위기가 우리 교회에 넘치기를 바란다.

 나는 꿈을 꾸어본다. 미사 후에 축복을 받기 위해 제대 앞으로 뛰어나오는 것을 미소로 바라보는 어른들 모습을 때때로 어린이들이 소란스럽게 하더라도 그것을 품어주는 교회 구성원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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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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