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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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삼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2.

눈물로 뿌리는 씨앗에 주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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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으로 올해 동아프리카 일대는 대대적인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남수단도 예외가 아니어서 비가 와야 할 우기 때 비가 아주 드물게 왔습니다. 지난 5월에 뿌린 땅콩씨앗이 가뭄으로 인해 자라지 못할 때는 올 농사를 망치는가 했습니다. 하지만 11월에 시작되는 건기를 앞두고 교우들과 함께 수확을 거두어보니 기적적으로 땅콩이 실하게 달려있었고, 작년보다 작황이 좋았습니다. 한 교리교사가 찾아와서 땅콩을 말리는 것을 보고 부러움 섞인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 저희들도 올봄 씨앗을 뿌렸지만 비가 오지 않아 씨앗이 다 타죽었습니다.”

그래서 번쩍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희들 밭에 주신 땅콩은 먹을거리가 아니라 씨앗이라고요… 잘 말려서 내년 봄에 사람들에게 씨앗으로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수기인 지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이들이 내년 씨앗을 잘 보관할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년 봄이 되면 땅콩씨앗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매달 공소 교리교사 모임을 하면, 한달치 주일 봉헌금을 모아 가져옵니다. 그나마 요즘은 수확철 이어서 땅콩 몇줌과 옥수수 몇 대 혹은 수수 낱알이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는 교리교사가 태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총에 감사하는 주일 봉헌은 중요한 신앙고백이니 봉헌을 하도록 신자들을 독려하라고 가르치지만, 이들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예, 신부님… 저희들도 열심히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과 자녀들의 먹을 것도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데 하느님께 무엇을 봉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봉헌 하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장 커다란 서러움은 배고픈 서러움이지요… 서럽게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녀들에게 나누어줄 몫을 떼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들의 한줌의 햇땅콩은 하느님께 봉헌하는 아름다운 멜키세덱의 제물임을 헤아렸습니다.

남수단은 문명사회로부터 소외된, ‘인간적인 삶’의 기초적인 혜택조차도 쉽지가 않은 곳입니다. 선진국의 ‘가난’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조차 힘든 궁핍함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뿌려지는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도록 땅을 가꾸는 힘은 ‘연대’에서 솟아남을 헤아립니다. 복음화의 ‘연대’이며 사랑과 생명의 ‘연대’는 ‘나눔’이 되고 그 나눔은 이들의 상처를 씻어내는 샘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햇살과 비를 내려주시면, 인간은 씨를 뿌리고, 풀을 뽑아야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수단이라는 거친 환경에 그나마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뜨거운 태양에 타죽지 않도록 그늘을 만들어 돌보고 매일 물을 주고 풀을 뽑아야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한알의 밀알이요 겨자씨처럼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되고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선교사는 끊임없이 자라나는 잡초처럼 가난의 굶주림과 총체적 ‘결핍’의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닮아 나 자신을 희생하여 땀 흘려 주님의 포도밭을 가꾸는 복음화의 농부임을 헤아립니다.

남수단에서 복음화 사업은 시편의 표현처럼, 눈물로 뿌리는 씨앗임을 헤아립니다. 거친 수풀과 척박한 땅에 뿌려진 땅콩씨앗 같습니다. 하지만 그 씨앗은 많은 이들의 땀방울 속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자라납니다.

그리곤 결국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것임을 믿습니다. 그것은 미사를 마치고 환하게 웃는 이들의 미소 속에, 고해성사를 마치고 기뻐하는 이들의 눈빛 속에서 난 이들의 마음에 퍼져가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세상 끝까지 함께 계셔주기로 약속하신 주님께서 이들의 고통 속에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 현지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한만삼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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