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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0) 콤보니 데이는 열릴 수 있을까?

흥분한 시위대 향해 초강수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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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벳 공소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고 아강그리알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날이 ‘콤보니 데이’였기 때문에 준비하는 과정도 지켜보고 도움도 줄 겸, 쉐벳 공소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미사가 끝나자 발과 다리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잔뜩 몰려옵니다. 쉐벳 공소에는 진료실이 따로 없습니다. 성당 앞쪽에 제의실이며 사제관이고 진료소이자 창고로 쓰는 작은 방이 있는데, 이곳으로 아이들이 들어오면 서있을 곳도 마땅하지 않고 복잡해져 제가 약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서로 발과 다리를 들이밀며 치료를 해달라고 합니다.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아이들에게 꿀밤을 주며 성당 외벽 둘레에 차례로 둘러앉히고 상처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콤보니 데이 야외 미사를 위한 장소가 꾸며지기 시작했습니다. 쉐벳 공소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는 콤보니 수녀회 소속 아나첼리 수녀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제대를 만들고 그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하십니다. 부족한 재료와 여건 속에서도 멋진 장식을 만들어 내시는 수녀님이 대단해 보입니다. 아이들도 미사 장소를 꾸미는 것이 재미있는지 수녀님이 요청하는 대로 움직여줍니다.

오후 7시부터 마당 한쪽 큰 나무 밑에서 내일 손님들에게 제공할 음식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누가 음식을 준비하는지 물었더니 역시 이곳에서도 ‘성모회’ 어머니들이 움직이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음식을 만들 때 전깃불이 필요하다고 하여 제너레이터를 이용해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전구와 전선을 구해 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음식은 밤을 꼬박 새워 준비한다고 합니다. 소를 두 마리나 잡았고 수백 명이 먹을 요리를 준비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또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자신들은 그저 기쁘고 즐겁다고 합니다.

해는 이미 저물었지만 한쪽에서는 보글보글, 지글지글 요리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이 시끄럽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보니 울타리 대문 밖에서 아이들이 시위를 합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자신들을 마당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축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도난 방지와 안전상의 이유로 정해진 인원만을 성당 마당 안에 들어오게 하고 그 외의 출입을 금지시킨 것입니다.

아이들의 시위가 점점 격해집니다. 아이들을 설득해 돌려보내려고 시도하던 중 총회장과 청년회장이 이마와 얼굴에 돌을 맞았습니다. 어떤 청년은 경찰에 신고를 하자고 합니다. 제가 직접 아이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하니 청년들이 저를 붙잡습니다. 아이들이 흥분한 상태여서 신부님도 돌에 맞을 수도 있다고. 살짝 겁이 나긴 했지만 아닌 척하며 대문 앞으로 나갑니다.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 무조건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초강수를 던졌습니다.

“너희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내일 콤보니 데이 축제는 취소다! 그리고 다시는 어떠한 축제도 열지 않겠다!”

말이 먹혔는지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뜹니다. 대문 앞에 있던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지났습니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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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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