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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1) 콤보니데이를 마치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빛을 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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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시위하던 아이들을 돌려보낸 후, 성당 앞쪽에 위치한 제의실이고 사제관이며 진료소이자 창고인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한쪽에 마련된 침대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모기장을 치고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현재 시각은 새벽 한 시, 여덟 시간 뒤에 열릴 콤보니데이 행사를 위해 잠을 청합니다.

눈을 떴습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 밖에서 북소리가 들려옵니다. 행사 준비를 위해 밤을 새운 청년들이 흥겨운 북소리로 콤보니데이의 아침을 열고 있습니다.

간단히 씻고 나가보니 청년회장과 임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제게로 다가옵니다. 밤새 요리를 하다 땔감과 숯이 다 떨어졌다며 시장에 같이 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해 얼른 차에 시동을 걸고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어슴푸레 보이는 시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작은 탁자를 펴고 낱개 포장된 과자와 토막 낸 비누, 사탕 등을 펼쳐놓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에 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딩카족,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 편견이 조금 씻겨나갑니다.

시장에 다녀오니 시간이 훌쩍 지나 미사시간에 가까워졌습니다. 룰루나무 밑에 특별히 준비된 미사장소에는 평상시 미사참례 인원의 세 배는 모인 듯합니다. 신자석에 쉐벳지역 공무원들도 눈에 띕니다. 쉐벳공소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처음 봅니다.

콤보니데이의 성대한 미사가 끝나고 2부 행사가 이어집니다. 2부 행사에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청년들의 ‘연극’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지역유지들의 ‘한 말씀’을 30분 이상 듣고 나서야 다음 순서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콤보니 성인의 활동을 사진과 그림을 가지고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콤보니 성인의 생애를 담은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기자들이 무대로 들어옵니다. 분장은 그럴듯하게 했습니다. 일렬횡대로 섭니다. 그러더니 무대 밖에서 성우가 말을 하고, 한두 사람씩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살짝 살짝 가볍게 몸을 움직입니다. 아마 ‘연기’를 하는 모양입니다.

연극을 전공한 동생을 둔 입장에서 이들의 연극은 연극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이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는 그 도전 자체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 작은 운동회가 열렸고 점심식사와 함께 공식적인 일정은 끝이 났습니다. 수고한 청년들의 뒤풀이가 있었지만 저는 해가 지기 전 아강그리알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또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요.

처음으로 모든 준비과정을 지켜보며 함께한 콤보니데이는 이들에 대한 저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들의 능력에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 행사를?’

하지만 멋지게 치러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열악한 상황에서 빛을 내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이들을 다시 보게 된 콤보니데이, 특별한 이 날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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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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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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