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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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신부의 수단에서 온 편지] (13) 빤아비에이 공소를 찾아(2)

북소리만 우렁찬 미사와 눈물의 세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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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 아래 대나무로 짜인 어설픈 제대와 짧은 두 개의 나무토막 위에 얹혀진 기다란 나무 의자들. 빤아비에이 공소의 모습입니다.

공소에 도착하기 전 제가 기대했던 것은 ‘우리가 도착하면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도착해보니 북 치는 청년 하나와 꼬마 아이들 서넛이 전부였습니다. 아침부터 준비해서 두 시간이나 달려왔는데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아프리카! 게다가 남수단!’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꼬마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북 치는 청년에게 가서 북 치는 법도 배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웃 마을 교리교사들도 나타나고 아이들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저와 함께 공소를 방문한 마이클은 한쪽에서 오늘 세례를 받게 될 아이들의 찰고를 시작합니다. 열한 명의 대상자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들도 있고 네댓 살 먹은 아이,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성호경을 긋는 것부터 시작해서 교리문답의 내용을 물어보는데, 다들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또박또박 큰 소리로 대답을 잘합니다. 물론 아기들은 엄마가 대신 준비해 대답을 했지요.

찰고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더 모여 백여 명 정도가 모였고, 도착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드디어 미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미사가 시작되었는데, 아뿔싸…. 북소리만 우렁찼지 성가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소 교리교사와 이웃 마을에서 찾아온 교리교사들만 성가를 부릅니다. 미사 중 신자들의 응답 역시 교리교사들의 몫이었습니다. 미사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요.

세례식은 더 가관입니다. 한국에서도 세례식 중에 아기들이 우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곳 아기들은 저를 보고 단지 낯선 사람이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난생 처음으로 얼굴이 하얀 괴물(?)’을 보고 공포에 질려 운다는 것입니다. 아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공포에 질린 얼굴에 물까지 뿌려가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세례 받은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진 찍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례 받은 아이들하고만 사진을 찍고 싶은데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끼어듭니다. 이 사람들 사진 찍히는 걸 너무 좋아합니다. 어떻게든 프레임 안에 들어가 보려고 애를 씁니다. 나중에 찍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겨우 세례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미사에 온 사람들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신이 나서 모여들어 찍기는 하는데 사진 찍는 순간만 되면 다들 표정이 굳습니다. 다음에는 사진 예쁘게 나오는 법을 미리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미사와 세례식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남았습니다. 약을 나누어줘야 하고, 준비해주는 점심도 먹어야 하고, 마을 원로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니 기운이 빠져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만 저희를 기다린 마을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내봅니다.

※수단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위원회

http://cafe.daum.net/casuwonsudan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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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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