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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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장미창, 영원한 진리이자 빛의 근원인 그리스도 표현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46.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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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배치도. 출처=Wikimedia Commons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나온 신비한 빛이 성당을 가득 채웠을 때 사람들은 눈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고 하늘나라를 상상할 수 있었다. 성당 안을 가득 채운 신비로운 빛으로 빛의 근원,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1요한 1,5)는 성경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느님의 신비함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표현 수단이었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의 중랑 바닥에는 지름 12m인 동심원이 있다. ‘미로’라고 불리는 통로다. 성지 예루살렘 또는 골고타 언덕에 이르는 순례의 길을 걷거나 무릎걸음을 하면서 예수님의 고통을 추체험(追體驗)하는 통로다. 지금은 없어진 꽃장식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다 걸으면 그 길이는 294m나 된다. 밝은 밖에서 성당에 들어와 포탈의 문이 닫히면 이 ‘미로’를 앞에 두고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신비롭고 선명한 빛에 둘러싸인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12~13세기 후반의 걸작인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의 잃지 않은 유일한 대성당이다. 건축 기술의 진보, 특히 성당 밖에 마련된 강력한 버팀벽과 플라잉 버트리스는 거대한 창문을 만들 수 있게 하여 내부 공간의 비물질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해줬다. 그런데 플라잉 버트리스를 건물 전체에 처음 본격적으로 도입한 고딕 성당은 샤르트르 대성당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플라잉 버트리스에는 두 단이 작은 원기둥으로 엮여 있다.

성당에는 모두 176장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모두 합치면 그 면적은 2000㎡가 넘으며 그려진 인물도 4000명에 가깝다. 샤르트르 대성당과 같은 13세기 중기의 고전 고딕 건축으로 명석한 건축 구성에 긴장감이 감돌지만, 본래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대부분 잃어버린 랑스나 아미앵 대성당에서는 샤르트르 대성당과 같은 빛의 신비로움을 감동적으로 체험하기 어렵다.

대성당의 ‘빛’을 말할 때 “성당이 빛으로 채워지고 있다”, “공간을 둘러싸는 벽 자신이 발광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색유리라는 투광 재료로 만든 벽, 곧 ‘은은히 투과하는’ 빛의 벽이다. 물리적으로는 빛이 지나는 벽이지만 시각적으로나 상징적으로는 스스로 빛나는 벽이다. 돌의 벽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비실체적인 벽이다. 따라서 스테인드글라스는 결코 창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빛은 눈부시게 빛나는 빛이 아니다. 짙은 빨간색, 짙은 파란색을 기조로 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풍부한 빛을 통과시키는 유리가 아니다. 그것은 어스레한 어둠 속에서 색채가 풍부한 빛을 공간에 떨어뜨린다. 로마네스크에 비해 고딕 성당의 창이 점점 커진 것은 내부를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내부를 신비한 색채의 빛으로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써 중세 사람들은 빛나는 하느님의 손안에 자신이 있다고 느꼈다. 고딕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주는 본질이 이것에 있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북쪽 수랑 장미창. 출처=Wikimedia Commons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남쪽 수랑 장미창. 출처=Wikimedia Commons

 


하느님의 말씀 형상화한 세 개의 장미창

고딕 대성당에는 수직을 향하는 방향성과는 상반되게 자기 완결적인 원의 형태를 한 장미창(rose window)이 있다. 장미창은 고딕 대성당의 정면인 서쪽, 횡랑의 남쪽과 북쪽 등 세 개의 포털을 통괄하듯이 그 위에 크게 뚫려 있다. 신비한 장미창의 빛은 약간 어두운 성당 안에 들어서야 비로소 강렬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일 드 프랑스 지방에 있는 고딕 대성당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장미창은 ‘태양창’ 또는 ‘차륜창(車輪窓, wheel window)’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그리스도를 빛의 아들이시며, 중앙에 군림하는 그리스도로부터 열두 개의 바큇살로 방사하는 열두 사도가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을 표현한다. 그런데 이 창을 ‘장미창’이라 부르는 까닭에 장미라는 말에 성모를 연상하여, 이 창이 성모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러나 장미창은 성모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생드니에 처음으로 나타난 장미창은 구약 성경의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구세주의 비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생물들을 바라보니, 생물들 옆 땅바닥에는 네 얼굴에 따라 바퀴가 하나씩 있었다.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에제 1,15-16)는 말씀을 형상화한 것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세 장미창은 남쪽, 북쪽, 서쪽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북쪽 장미창은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남쪽 장미창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서쪽 장미창은 심판자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북쪽 수랑의 장미창(1235년)은 구약을 형상화했고, 남쪽 수랑의 장미창(1225~1230년)은 신약을 형상화했으며, 서쪽 정면의 장미창(1215년)은 요한 묵시록을 따르고 있다.

빛나는 장미창은 극도로 중심적이며 모든 빛의 근원을 뜻한다. 세 개의 장미창은 영원하신 진리이자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영광송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처럼, 과거(“처음과 같이”, 구약)와 현재(“이제와”, 신약)와 미래(“항상 영원히”, 장차 오실 심판)라는 세 개의 시간을 나타낸다. 이렇게 성당은 세 개의 시간이 합쳐진 영원한 현재를 재현하고 있었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 서쪽 정면 장미창. 출처=Wikimedia Commons


중세 사람 눈으로 스테인드글라스 보아야

그런데 흔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중세 사람들을 위해 성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그렸다는 말을 많이 한다. 현대와는 달리 성직자만 성경을 읽을 수 있었던 중세에는 글을 모르는 신자들은 강론을 들은 다음, 성당을 장식한 그림과 조각 등으로 강론 내용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은 그것에 그려진 도상(圖像)을 어디까지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었을까?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작은 성당이라면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을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르트르 대성당과 같이 거대한 성당에서 많은 곳에 세세하게 그려져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대부분은 이미 성경의 내용을 잘 아는 이도 인식하기 어렵다. 저 높은 데 있는 그림은 더욱 그렇다. 중세 사람들의 시력이 우리보다 좋았다고 말한들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성당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 한 장 보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 그러니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시각적 성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의 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오늘의 내 눈이 아닌, 그것을 만든 중세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먼저 800년 전에 그들은 성당 바닥에 서거나 앉아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닿는 빛을 받았고, 이에 감탄하여 그것에 그려진 이미지를 읽고 있었다. 그다음 하나의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서서 그것을 구성하는 복잡한 틀과 다양한 도형을 일일이 음미하며 서로 관련을 맺었을 것이다. 이어서 회중석 측랑이나 주보랑을 걸어가면서 이어지는 창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교차부에 서서 몸의 방향을 바꾸어 내부 공간 전체를 바라보면서 보이는 모든 창을 서로 연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거룩한 도상을 통해 안쪽에서 쏟아지는 빛과 방대한 도상에 그저 압도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대성당을 이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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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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