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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결정] <1> 유지충과 권상연

''''대역죄인''''에서 근대화 연 ''''순교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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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7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을 승인했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왜 시복 추진을 해야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해답은 간명하다.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기 위한 데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받을까? 순교자들의 삶을 `재해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몫이자 신자 개개인의 몫이다. 이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열전`을 통해 어떻게 선조들의 삶을 본받을 수 있을지를 새긴다.



 
▲ 전주교구 전동성당을 배경으로 세워진 칼 쓴 윤지충(왼쪽)과 오랏줄에 묶인 채 십자가를 든 권상연의 조형물.
 `윤지충(바오로, 1759~1791)과 권상연(야고보, 1751~1791)`. 시대를 앞서 간 선구적 신앙인이었지만 또한 유교 사회의 엄중한 질서를 뒤흔든 `대역죄인`이었던 두 순교자는 어찌보면 이제서야 대역죄인이란 오명을 공식으로 씻게 됐다. 이르면 8월께, 늦어도 10월께 시복을 통해 복자가 됨으로써 한국 근대화의 새 장을 연 순교자로서 그 명예를 회복한다.

 이들은 왜 참수됐을까? 죄명은 단순했다. 1790년 중국 베이징 구베아(A. Gouvea) 주교가 조선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은 이종사촌인 권상연과 함께 집안에 있던 신주(神主)를 불살랐다. 신주란 사당 따위에 모셔 두는 죽은 사람의 나무 위패다. 또 이듬해 여름, 윤지충은 어머니(권상연의 고모)가 사망하자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 예식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길이 여덟 치, 폭 두 치 가량의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죄목이 다였다. 이것이 이른바 `진산사건`의 핵심이다.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소문이 조정까지 전해지면서 온 나라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나 마찬가지였을 터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 이념이자 질서인 유학, 그 가운데 골자인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제례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조정은 두 사람을 체포하라는 명을 진산군수에게 내린다. 이 소식을 들은 윤지충은 충청도 광천으로, 권상연은 충청도 한산으로 피신했다. 그러자 진산군수는 윤지충의 숙부를 감금했고, 이에 그들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진산관아에 자수한다. 1791년 10월 중순께였다.

 당연히 회유와 설득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며 신앙을 지킨다. 진산관아에서 전주감영으로 이송된 뒤에도 그들은 전라감사의 문초를 견뎠다. 천주교 신자들의 이름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오히려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면서 제사의 불합리함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두 사람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천주님을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고 대답(「정조실록」 권33)할 뿐이었다. 전라감사는 하는 수 없이 이들의 최후진술을 받아 조정에 보고했고, 정조는 두 사람을 처형하라는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사형판결문이 전주에 도착하자 전라감사는 1791년 12월 8일 두 사람을 옥에서 끌어내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했다.

 두 순교자는 왜 마치 `잔치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즐겁게 죽어갔을까? "천주를 배신하기보다는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한 마디로 신앙이었다. 그들은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 유교 사회의 질서를 엄청나게 뒤흔드는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조상제사를 금하는 교회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천주교인으로서 더 중요한 법도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천주교는 지금도 조상제사를 금할까. 1700년대 초반 조상제사를 금했던 교황청 입장은 20세기에 들어와 바뀌었다. 비오 12세 교황은 1939년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에서 조상 제사를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닌 사회 문화적 풍속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리는 행위 등은 허용한다. 하지만 위패에 `신위` 또는 `신주`라는 글씨는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참된 신은 하느님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법인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사의 근본 정신은 선조에게 효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뿌리 의식을 깊이 인식하며, 선조의 유지를 따라 진실된 삶을 살아가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정신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한 사도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제134조 1항).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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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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