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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열전]<3>원시장ㆍ원시보

천주 부르심 답한 내포교회 복음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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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0년 홍성 내포축제 당시 원시장과 박취득, 황일광 등의 순교를 형상화한 순교극`내포의 피바람`이 홍성 장터마당에서 공연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1779년 겨울에 열린 `천진암 강학회`는 한국 천주교회 설립 배경이자 기원을 이룬다. 2013년 3월 2차 시복 추진 대상자에 선정된 광암(曠菴) 이벽(요한 세례자, 1754~1785)이 이날 강학에 함께함으로써 조선 유학자들 사이에서 천주교 신앙을 포함하는 `서학(西學)`이 본격 연구되고 토론됐기 때문이다. 1768년에서 1784년까지 17년간 거의 해마다 열린 천진암 강학 중 `1779년 강학`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다. 조선의 신앙 수용은 이처럼 `주님의 길을 닦은 선구자` 격인 이벽과 같은 신진 실학자들 주도로 이뤄졌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가 유생뿐 아니라 이른바 `양인` 계급에서도 폭넓게 퍼져나갔다는 역사를 보여주는 순교자들이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충청도 홍주(현 홍성) 출신 원시장(베드로, 1732~1793)과 그의 사촌형 원시보(야고보, 1730~1799)다.
 
 1791년 신해박해 당시 체포돼 홍주에서 순교, 내포교회 사상 첫 순교자가 된 원시장은 양반이나 중인이 아닌 `평민`으로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순교한 첫 사례였다. 신해박해(1791)를 피해 피신했다가 1799년 기미년 박해 때 청주병영에서 순교한 원시보 또한 입교 이후 평신도로서 덕행 실천에 있어 모범을 보인 인물로 후세에 전해진다.
 
 원시장과 원시보가 입교한 것은 대략 1788년에서 1789년으로 추정된다. 50대 후반의 연령대다. 당시는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된 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1년 넘게 복음을 접하고 교리를 배운 원시장의 표현에 따르면, 신앙은 `수천 년간 목숨을 보전해준 약`이었다.
 
 그랬기에 원시보와 함께 교리를 배운 원시장은 고향 홍주 응정리(현 충남 당진군 합덕읍 성동리)로 돌아오자마자 친척과 친구들에게 `열렬히` 복음을 전했다.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워낙 성격이 사납고 거칠어 `호랑이`라고 불렸던 그는 신앙을 실천하면서 성격이 변해 온화함을 보이며 가난한 이웃에 재산을 나눠주고 이웃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키는데 열중했다. 이로 인해 1791년 신해박해가 일어나자마자 체포돼 홍주관아에서 매를 맞고 숨진다. 124위 순교자 약전에는 그의 사인을 `장사(杖死)`로 쓰고 있다.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긴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주리(周牢)`라는 형벌을 받았고, 곤장 중 가장 큰 `치도곤(治盜棍)`을 70대나 맞았다. 그러다가 감옥에 찾아온 한 교우에게 세례를 받고 1793년 1월 28일 61세를 일기로 순교하기에 이른다.
 
 반면 원시보는 1791년 박해 때 친구들 권고에 따라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가 훗날 사촌동생이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이때 원시장과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다고 한다. 1795년 조선에 파견된 첫 선교사제인 주문모 신부를 만났지만, 첩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성사를 받지 못하자 집으로 돌아와 즉시 첩을 내보내고 더 충실히 교회 가르침을 따랐다.
 
 이로부터 2년 뒤 충청도 전역을 휩쓴 1797년 정사박해 여파로 이듬해 체포돼 덕산 관아를 거쳐 `두 다리가 부러진 채` 청주 병영으로 끌려가 온갖 혹형을 받다가 순교한다. 1799년 4월 17일, 그의 나이 69세였다.
 
 원시장은 홍주 관장이 혈육의 정에 호소해 그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자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만, 천주께서 부르시니 어찌 그 목소리에 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순교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원시보 또한 청주 병영으로 이송되는 와중에 부인과 자식, 친구들이 울면서 따라오자 "주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기 위해선 인간 본성을 따라가선 안 된다"며 끝끝내 순교 원의를 지켜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까지 오로지 주님 수난만 생각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는 신앙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돌이켜보면, 우리 삶과 우리 신앙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오롯이 신앙에 매료돼 그 안에서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산 두 순교자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에 매료돼야 할지, 무엇의 종이 돼야 할지를 보여준다. 또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을 내려놓고, 어떤 것을 지켜야 할지 시사한다. 나아가 새로운 삶을 사는 열쇠가 무엇인지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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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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