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하느님의 종 124위 열전]<4>윤유일ㆍ지황ㆍ최인길

사제 영입 위해 청나라 간 조선교회 밀사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윤유일이 구베아 주교를 만났던 중국 베이징 난탕(南堂) 천주당. 사진은 지난 2009년 성탄시기 당시 난탕 대성당이다. 【CNS】

 `밀사(密使)`하면, 다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 특사로 파견된 이준(1859~1907) 열사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에 앞서 조선 천주교회에도 밀사가 있었다. 초기 조선교회의 가장 큰 현안이던 `사제 부재`라는 과제를 해결하고자 성직자 영입을 위해 중국에 파견된 윤유일(바오로, 1760~1795)과 지황(사바, 1767~1795) 등이었다. 청나라에 조선교회 밀사로 파견된 이들은 기어코 성직자 영입을 이뤄냈고, 최인길(마티아, 1765~1795)은 이에 부응해 한양에 선교사 은신처를 마련하고 선교 거점을 확보했다.
 
 첫 밀사 파견은 조선교회가 설립된 지 5년 만인 1789년에 이뤄졌다. 밀사로 선발된 신자는 경기도 여주의 몰락한 양반인 윤유일이었다. 교리와 학식에 밝았을 뿐 아니라 심지가 굳고 성격이 온순했던 그는 그해 10월 베이징을 오가는 상인으로 가장, 연례 사절단 일행에 끼어 베이징에 들어갔다. 조선교회가 중국교회에 전할 서한을 옷 안에 숨긴 채였다. 이듬해 초 베이징 베이탕(北堂) 천주당에서 라자로회 선교사들을 만난 그는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곧 이어 난탕(南堂) 천주당에서 구베아 주교를 만나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하는데 필요한 준비`에 대해 들었다.
 
 1790년 봄 윤유일이 귀국하자 조선교회는 그의 전언을 토대로 성직자 영입 계획을 마련했고, 윤유일은 다시 한 번 베이징에 다녀와야 했다. 지금이야 서울과 베이징 간 항공편 거리가 940㎞으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3025리(이갑의 「연행기사(燕行記事)」 기준), 곧 1187.99㎞나 되는 긴 여정이었다. 한양과 베이징을 두 번이나 오간 윤유일 덕에 구베아 주교는 1791년 중국인 오 요한(포르투갈 이름 Dos Remedios) 신부를 조선에 파견했지만, 오 신부는 국경에서 조선교회 신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다시 베이징에 돌아와 선종하는 바람에 결국은 입국에 실패한다.
 
 1791년 말에 일어난 신해박해로 성직자 영입운동은 한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년 뒤 다시 성직자 영입이 재개돼 윤유일과 한양의 궁중악사 집안 출신인 지황, 박 요한(혹은 백 요한)이 밀사로 선발돼 다시 국경을 넘는다. 이들 중 윤유일은 국경에 남았고, 지황과 박 요한은 조선 사신 행렬에 끼어 베이징으로 향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뒤 `40일간 눈물을 흘리며 견진과 고해, 성체성사를 받는` 지황의 모습에 감동한 구베아 주교는 1794년 초 주문모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24일 밤 의주를 통해 마침내 주 신부가 조선에 입국함으로써 성직자 영입은 성공한다.
 
 한양의 역관 집안 출신인 최인길은 이듬해 1월 5일 주 신부가 한양에 도착하자 자신이 마련한 한양 계동집(현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주 신부를 은신시킨다. 이때부터 그는 주 신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얼마 안 돼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교우들의 재빠른 대처로 주 신부는 다행히 최인길의 집에서 빠져나와 강완숙(골룸바, 1761~1801)의 집으로 피신했다. 이에 앞서 피신 시간을 벌어주고자 주 신부로 위장했던 최인길은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물론 이런 위장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주 신부는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주 신부의 입국 경위가 밝혀지고, 밀사로 활약한 윤유일과 지황도 곧바로 체포됐으며, 이들 셋은 1795년 6월 28일 포도청에서 곤장을 맞다가 숨을 거둔다. 이것이 이른바 `을묘박해`다.
 
 사극에서나 보던,`매를 맞다가 죽는` 참상이 스쳐 간다. 주리에 곤장이 등장하고 피범벅이 된 순교자들은 박해 도구에 기대어 가쁜 숨을 내쉰다. 오늘을 사는 우리로서야 상상할 수 없는 고초지만, 이들의 순교라는 씨앗에서 교회는 자라나고 쇄신된다. 이들 순교자는 `땅에 떨어지고 죽음으로써 열매를 맺는`(요한 12,24) 밀알과도 같은 셈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피는 오늘에도, 미래에도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 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3-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1요한 5장 11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