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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열전] <12>홍낙민·재영 부자

순교의 불꽃, 대 이어 하늘로 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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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순(마리아) 작 `아! 서소문-사랑`, 73.5×45.5㎝, 한지에 먹과 채색, 2013년. 지난 2월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제40회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정기전으로 열린 `아! 서소문`전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피의 박해가 100여 년간 지속되다 보니 ‘대를 잇는’ 순교자들이 나타났다. 많지는 않지만 드물지도 않았다. 홍낙민(루카, 1751~1801)ㆍ재영(프로타시오, 1780~1840) 부자의 믿음살이도 대를 이었고, 지난해 3월 홍재영의 아들 홍봉주(토마스, 1814~1866)가 2차 시복대상자에 포함됨으로써 풍산 홍씨 3대도 하느님의 종이 됐다.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신앙 고백이 아닐 수 없다. 통회와 정개(定改)를 통해 이들은 진정한 믿음의 길로 들어섰고, 예언자적 부르심에 투신했으며, 궁극으로는 사랑과 애덕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갔다. 이로써 순교는 죽는 이유를 증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를 드러내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믿음과 희망, 애덕의 순간이 됐다.

충청도 예산 양반 집안 출신인 홍낙민의 삶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예산에서 충주로 이주해 살던 중 1780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1788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리 탄핵기관인 사헌부 지평(정5품)을 거쳐 문관 인사를 관장하는 이조정랑(정5품)을 지낸 관료였다. 그가 세례를 받은 건 급제 4년 전인 1784년으로, 1776년 경기도 양근의 권철신(암브로시오, 1736~1801)의 제자가 되면서 신앙에 입문했으니 초창기 교회지도자다. 1791년 신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정조의 명에 따라 신앙을 멀리했지만, 이는 겉으로만 드러난 모습이었을 뿐 집에 돌아온 뒤엔 기도생활과 대재(금식재)ㆍ소재(금육재)를 지켰다. 최근 발굴된「수기」(隨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라는 문서첩에 따르면,1791년 말 충청관찰사 박종악(1735~1795)은 정조에게 보낸 비밀 어찰에 대한 답장에서 내포(대전교구)에 천주교를 전파한 인물로 홍낙민ㆍ낙교 형제를 꼽고, 홍낙민을 ‘호중(湖中, 충청도의 별칭) 사학의 종장(宗匠)’으로 지목하고 있다. 1799년에는 모친상에도 교회 가르침에 따라 신주(神主)도 모시지 않았을 정도로 열심을 보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동료들과 체포돼 1801년 4월 8일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았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어려서 부친에게 교리를 배운 홍재영은 장성한 뒤 신앙공동체를 이뤄 함께 교리를 연구하고 교회활동에 참여한다.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이 그의 동서다. 그러나 1801년 박해 당시 체포됐을 땐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전라도 광주에 유배된다. 신산스런 유배생활 중 신앙을 되찾은 그는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고, 일주일에 세 차례나 대재를 지켰으며, 형편이 어려운 교우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1832년 조선 조정에서 대대적 사면령을 내렸음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광주에 살며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이로부터 7년 뒤인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의 열망으로 가득찬 그는 피신한 교우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보살폈으며, 오갈 데 없는 여교우 네 명도 돌봤다. 그러던 중 전주 포졸들에게 잡혀 광주관아를 거쳐 전주로 이송돼 1840년 1월 4일 동료 오종례(야고보)와 이 막달레나, 최조이(바르바라) 등과 함께 전주 형장에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향년 61세였다.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면, 순교영성이란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선포하는 교회의 선교사명(mission)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특히 홍낙민 결안(結案), 곧 사형선고 최종 판결문에는 그의 삶과 신앙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청(鞫廳)에서 아뢰기를, 천주교를 배반하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예수를 욕하겠는가 하면서 제멋대로 공술하니, 그 흉악함이 최창현ㆍ최필공과 하나이며 둘이고, 둘이며 하나입니다.… 청컨대 홍낙민은 요사한 글과 말을 전해 여러 사람을 미혹시켰다는 다짐을 받고 격식을 갖춰 (사형을) 거행하소서 했더니 ‘아뢴 대로 하라’ 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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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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