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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결정<17>윤점혜·정순매

첫 동정녀 공동체 만들며 신앙 모범 보이다 참수형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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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동희 화백이 그린 하느님의 종 윤점혜 아가타 영정. 그림제공=수원교구 어농성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가운데에는 ‘바르바라(Barbara)’라는 세례명을 쓴 순교자가 유난히 많다. 심아기(1783∼1801)와 정순매(1777∼1801), 구성열(?∼1816), 심조이(1813∼1839), 최조이(1790∼1840) 등 5위나 된다. 이들이 이처럼 바르바라를 자신의 세례명으로 쓴 데는 이 성녀가 ‘동정녀’라는 데 이유가 있다. 성인전을 통해 중세 때 가장 인기가 높고 대중적인 동정 순교자라는 걸 알게 된 조선 여인들이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바르바라’를 선택했다.

그런데 또 다른 동정 순교자 ‘아가타(Agatha)’를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삼은 윤점혜(아가타, ?∼1801)와 정순매(바르바라, 1777∼1801)는 실제로 동정녀의 삶을 살았다. 특히 주문모(야고보, 1752∼1801) 신부의 지시에 따라 동정녀 공동체를 만든 윤점혜는 그 공동체의 회장에 임명돼 다른 동정녀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사학징의」에 따르면, 윤점혜와 김경애, 조도애, 박성염, 이득임, 정순매 등 6명이 드러나 있는 이 공동체는 한국 천주교회사에 등장하는 첫 동정녀 공동체로, 처녀가 혼인하지 않은 채 혼자 산다거나 수도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당시의 엄혹한 유교 체제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열망을 현실화했다.

124위 가운데 한 명인 윤유일(바오로, 1760∼1795)의 사촌 동생인 윤점혜는 양근 한감개(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살았고, 어머니 이씨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일찍부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고자 동정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그는 주위에서 혼인을 재촉하자 어머니가 마련해둔 혼수 옷감으로 남장을 지어 그 옷을 입은 채 사촌오빠 바오로의 집에 가서 숨었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과 이웃의 질책을 꿋꿋이 견녀내던 중 그는 1795년 주 신부가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이주해 2년 뒤 세례를 받았다.

상경한 뒤 남편을 잃은 과부 행세를 하며 동정을 지켜나가던 그는 어머니가 선종하자 여회장 강완숙(골룸바, 1761∼1801)의 집으로 가서 함께 생활했으며, 동정녀 공동체를 형성한 뒤 회장에 임명돼 다른 동정녀들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교리와 계명, 재(齋)를 엄격히 지키고 극기와 성경 읽기, 묵상에 열중해 다른 신자들의 모범이 됐다. 이뿐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 연도를 자주 바치며 아가타와 같이 순교하기를 열망했다. 그러던 중 일어난 1801년 신유박해로 강완숙 등 동료들과 함께 체포돼 포도청과 형조에서 신문을 받고 나서 양근으로 압송돼 그해 7월 4일 참수됐다. 당시 그의 목에서 흐른 피는 우윳빛이 나는 흰색이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수원교구 이천 어농성지에는 그의 시신이 없는 의묘(가묘)가 조성돼 있다.

1795년 오빠 정광수(바르나바, ?∼1802)ㆍ윤운혜(루치아, ?∼1801) 부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정순매는 자신의 올케인 윤운혜의 언니인 윤점혜가 회장으로 있던 동정녀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1800년 주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로는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애덕 실천에 정성을 다했다. 그렇지만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으며 아주 뛰어난 용덕을 보여줬다. 단 한 사람의 교우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죽임을 당할지라도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며 여러 차례 신앙을 증거했다. 마침내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자신의 고향인 여주로 이송돼 그해 7월 3일 참수형을 받고 24세로 순교했다.

신체적으로 순결성을 지키는 상태를 뜻하는 ‘동정’의 목적은 사랑의 도구로서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실을 보는 데 있다. (1코린 7,32-35 참조) 그러기에 혼인생활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제각기 다른 생활양식을 하고 있지만, 혼인생활이나 동정생활은 사랑으로 자신을 해방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점혜가 회장으로 있던 동정녀 공동체 또한 ‘영육으로 신성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또 이들은 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 생활을 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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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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