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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결정 <20>김이우·김현우

형 김범우 유배 후에도 신앙 지키다 순교한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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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김이우 바르나바

▲ 동생 김현우 마태오
 
한국 천주교회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지는 않지만, 교회사를 접하게 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1785년 봄 ‘을사추조적발사건’(명례방 사건)으로 체포돼 유일하게 형벌을 받은 김범우(토마스, 1751∼1781)다. 당시 함께 집회를 갖던 정약전(1758∼1816)ㆍ약용(요한, 1762∼1836) 형제,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51∼1792) 등은 양반이어서 훈방됐지만, 중인이던 김범우만은 투옥돼 형벌을 받고 유배형을 받았다. 충청도 단양(혹은 경상도 밀양 단장)으로 유배된 그는 1786년 가을 형조에서 받은 형벌의 여독으로 사망했다. ‘유배사’였다. 그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넷째와 다섯째 김이우(바르나바, ?∼1801)ㆍ현우(마태오, 1775∼1801) 이복형제는 8월 시복을 앞두고 있지만, 형 김범우는 지난해 3월 2차 시복대상자에 포함돼 시복 추진 중이다.

김이우ㆍ현우 형제는 ‘그 형에 그 아우’다웠다. 이승훈(베드로, 1756∼1801)에게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형제는 맏형 김범우가 명례방 사건으로 유배를 떠나자 어려운 처지에 놓였지만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1752∼1801) 신부가 입국하기까지 형제는 무려 9년간이나 비밀리에 기도 생활을 하며 신앙을 지켰다.

형제는 주 신부가 입국한 뒤 홍필주(필립보, 1774∼1801)의 집에서 주 신부를 만나고 정인혁(타대오, ?~1801), 최필제(베드로, 1770~1801) 등과 신앙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에서 형제는 자주 기도 모임을 갖고 교리를 익히는 데 힘썼다. 주 신부가 박해 위험 때문에 형 김이우의 집을 피신처로 삼으면서 그곳에서는 수시로 세례 예식이 행해졌으며 미사도 봉헌됐다. 형제는 또 주 신부가 설립한 평신도들의 교리 연구 및 선교 단체인 명도회에도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형은 그해 5월 말께 포도청에서 장형을 받다가 순교했고, 동생은 7월 2일 서소문 밖에서 8명의 동료와 함께 참수됐다.

이들 형제에 대한 사형판결문은 이기경의 「벽위편」과 「사학징의」를 통해 상세히 전해진다. “3형제가 함께 천주교에 빠져 똑같은 악행을 저질렀으며, 남녀가 뒤섞여 지내며 천주교 서적을 외웠다. 많은 사람을 속여 그릇된 길로 이끌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비록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천주교는 끝내 옳은 것’이라고 했다.”

여덟 형제 중 맏이 김범우와 김이우ㆍ현우 형제의 덕행 실천과 신앙 고백 발자취는 모든 교우의 기억 속에 새겨져 오늘날에도 빛나는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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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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