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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24위 열전<27>최인철

복음 불모지에 진리 전한 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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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최인철 이냐시오

새로운 문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계층이 있다면, 바로 역관(譯官)이다. 이들은 언어와 지식, 기술, 행정실무뿐 아니라 경제력에서까지 문무 양반을 앞섰다. 중국이나 왜, 몽골, 여진 등과의 통역 업무와 교류, 밀무역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부를 축적해 나갔다. 한학이나 몽학, 여진학(훗날 청학), 왜학 등에도 정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역어지인’(譯語之人)이나 ‘설인’(舌人), 혹은 ‘상서’(象胥) 등으로 불리며 중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인의 무리들은 양반도 아니고 상인(常人)도 아니며 둘의 중간에 있어 가장 교화하기 어려운 자들”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조 말 개화파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는 사상적 배경까지 제공했다. 역관이자 서화가, 금석학 수집가로 유명한 오경석(1831~1879)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역관들 사이에 천주교 신자가 유독 많았던 이유도 외국과의 통상교류를 전담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초창기 교회 지도자들은 김범우(토마스, 1751∼1781)나 복자 최인길(마티아, 1765∼1795)처럼 상당수가 역관이었다.

역관 출신인 복자 최인철(이냐시오, ?∼1801)은 최인길의 동생으로, 형에게서 교리를 배워 열심한 신자가 됐다. 1795년 형이 주문모(야고보, 1752∼1801) 신부 대신 잡혀가 순교하자 그는 교회 지도층의 일원이 돼 더욱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으며 동료들과 함께 교리를 연구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데 열중했다. 또한 형이 그랬던 것처럼 주 신부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피신을 도왔다.

그는 형이 순교한 지 6년 만에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곧바로 체포됐다. 박해 당시 외숙모의 집으로 피신했다가 체포된 그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열렬히 신앙을 증거했다. 오히려 관리들 앞에서 교리를 설명하며 천주 신앙이 진리라는 사실을 역설하기까지 했다. 이에 형조에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801년 7월 2일 한양 서소문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형에 처한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한 것은 아니다. 1791년 신해박해 때 형과 함께 체포돼 형조로 끌려간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협박과 회유, 형벌을 받았고 형과 동료들은 이에 굴복했을 때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신앙을 지켰다. 이에 형조에선 그를 회유하고자 사흘 동안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늙은 어머니와 형제들의 호소에 그는 배교하고 임금의 회유를 받아들여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석방된 전력도 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잘못을 깊이 뉘우친 그는 다시 교회 품으로 돌아와 교회 일을 도왔다. 특히 그는 형과 함께 주 신부 영입에 힘쓰기도 했다. 훗날 사형선고를 받았을 당시 형조가 적용한 그의 죄목은 그래서 △1791년에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린 죄 △1795년 형이 죽은 뒤에도 천주교를 신봉한 죄 △동료들과 함께 천주교를 널리 전파한 죄 △체포된 뒤에도 천주교 교리를 훌륭하다고 설명한 죄 △주 신부를 영입하고 도운 죄 등 다섯 가지나 됐다.

처형 뒤 동료들과 그의 시체는 폭염과 장맛비 속에 며칠 동안 방치됐다. 이들의 시신을 매장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시신에 다가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라워했다고 전해진다. 시신에 아무런 부패의 흔적도 없었고, 피부가 온전했으며, 얼굴이 건강한 사람들의 얼굴이었으며, 피도 방금 상처에서 흘러내린 것처럼 생생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이로움은 교우들은 물론 외교인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여러 차례의 배교를 했지만 결국은 순교에까지 이르른 최인철의 증언은 “죽음을 당할지라도 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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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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