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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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상에는 테러 희생자들의 혈흔 그대로… 평화를 기도하다

[특별기획-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스리랑카(2) 콜롬보대교구 성 안토니오·세바스티아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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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롬보 성 안토니오 성당 한 켠에 테러 희생자 56명 이름을 새긴 추모비가 마련돼 있다.

▲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 바닥에 폭탄이 터진 흔적이 유리로 덮여 보존되고 있다.




2019년 4월 21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다. 콜롬보대교구 순례지 성 안토니오성당에는 아침부터 신자 수백 명이 모였다. 미사가 한창이던 오전 8시 45분, 별안간 입구 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성가와 기도 소리는 비명과 절규로 바뀌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자행한 자살폭탄 테러였다. 성 안토니오성당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네곰보 성 세바스티아노성당에서도 같은 참극이 벌어졌다. 성 안토니오성당에서 56명, 성 세바스티아노성당에서 115명이 희생됐다.

주님 부활 대축일 참사 1주기를 앞둔 성 안토니오성당은 경비가 삼엄했다. 입구에 소총으로 무장한 군경이 서 있었고, 보안 검사대도 설치 중이었다. 벽에는 ‘안토니오 성인이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소서’라는 기도문과 테러 당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성당 안에 들어서니 바닥에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다. 폭탄 파편이 남긴 지울 수 없는 흉터였다. 성당 한편에는 루르드 성모상과 함께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추모비가 있었다. ‘고메스’란 이름이 유독 많았다. 한날한시 하느님 곁으로 떠난 일가족이었다. 부모와 어린 세 아들, 다섯 식구였다. 본당은 추가 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비석에 이름을 새겼다. 마지막 희생자는 몇 달 전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샨타’였다. 순교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성 세바스티아노성당의 시간은 테러가 일어난 그 순간에 멈췄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폭탄이 터졌던 시간에 고정돼 있었다. 본당은 테러 흔적을 유리로 덮어 영원히 기억하도록 했다. 폭탄이 터진 성당 바닥에는 사람 발자국보다 큰 파편 자국들이 움푹 파여있었다. 여기서 날아간 파편은 5m 남짓 떨어진 반대쪽 벽에 박혔다. 테러로 훼손된 예수 부활상에는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성상은 그렇게 온몸으로 참상을 증언했다. 성당 마당에는 양팔을 벌린 예수 그리스도상과 원형 추모비가 마련돼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위에는 “너희 이름이 천국에 쓰여 있다”고 적혀 있었다.

현재 두 본당은 참상을 딛고 일상을 살고 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순례단은 2월 24일 성 안토니오성당 낮 미사에 참여했다. 마흔 명가량의 신자들은 미사를 마친 뒤 지그시 눈을 감고 안토니오 성인상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테러로 먼저 떠난 이를 위한 기도일까? 수십 년간 성당을 관리한 페레라(가브리엘, 85)씨에게 “성당에 나오는 게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대뜸 안토니오 성인상 이야기를 꺼냈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성당 이곳저곳 있던 안토니오 성인상은 다른 성상과 달리 모두 멀쩡했다고 했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안토니오 성인이 지켜주시니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은 스리랑카 신자들이 가장 공경하는 성인이다. 남성 신자 10명 중 4명의 세례명이 ‘안토니오’일 정도다. 이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가 스리랑카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인 까닭이다. 안토니오 성인은 특히 분실물을 잘 찾아준다고 알려졌다. 스리랑카 신자들은 물건을 잃어버리면 안토니오 성인상에 흰 천을 대고 기도한다. 성인은 비신자에게도 인기가 많다. 오죽하면 불교 신자의 기도를 가장 잘 들어준다는 우스개도 있다. 그래서 콜롬보 성 안토니오성당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불교를 비롯한 타 종교 신자의 희생도 컸다. 성 안토니오성당은 스리랑카 교회의 안토니오 신심 중심지다. 이곳에는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들여온 성인의 혀와 인도 고아에서 온 200년 된 ‘기적의 안토니오 성인상’이 있다.

콜롬보=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말콤 란지스 추기경(콜롬보대교구장)

▲ 란지스 추기경




“성당 안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종교를 떠나 다 순교자로 올리고 싶습니다. 함께 미사하고 기도했으니 그들 모두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봅니다.”

부활절 테러로 순교한 신자들의 시복시성에 대해 콜롬보대교구장 말콤 란지스 추기경<사진>은 “아직 계획 단계”라며 이렇게 말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 신자도 주님의 집에서 주님 부활을 축하하다 선종했으니 시복시성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다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스리랑카에 어울리는 발상이었다.

란지스 추기경은 테러 직후 불교와 이슬람교 등 이웃 종교가 인적ㆍ물적으로 많은 힘을 보탰다고 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노동을 꺼리는 스님들도 현장 수습을 도와 감동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테러 직후 종교 간 유혈 충돌을 겪을 뻔한 아찔한 순간도 회고했다. “네곰보 가톨릭 어부들 사이에서 반이슬람 감정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가서 예수님을 본받자며 눈물로 호소해 싸움을 막았죠.”

란지스 추기경은 참사 1주기인 4월 21일 타 종교와 함께하는 특별한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모든 성당과 사찰에서는 예식 전 묵념을 하고 종을 울린다. 또 성당ㆍ사찰과 더불어 이슬람ㆍ힌두교 사원에서도 동시에 희생자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추기경은 “아직도 테러 배후가 누군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며 스리랑카 정부가 진상 규명에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테러에 대한 책임도 물었다. “테러 직전 인도 정보기관이 우리 쪽에 4차례 테러 위험을 경고했지만, 정부는 대응은커녕 교회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습니다. 30분만 일찍 알았어도 대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테죠.”

란지스 추기경은 테러 수습 과정에서 바티칸을 비롯한 세계 교회가 많은 도움을 줬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응원 메시지와 함께 금전적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한국 교회 염수정 추기경도 도와주셨죠.”

추기경은 또 희생자 유가족을 돌보는 데 콜롬보대교구가 많은 노력을 들인다고 말했다. 교구는 대리석으로 추모상을 제작해 각 유가족에 전달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이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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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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