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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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회, 6회 집단 지도 체제로 의사 결정권 가진 최고 기관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9. 명도회 6회의 조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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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교구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에 전시된 이종상 화백의 순교 기록화 ‘손 요한의 신리 신자들에 대한 염습’. 박해시절 신앙을 지키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피난길을 떠났던 손 요한은 그때에 순교하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을 염습하기 시작한다. 전염병에 걸리고 부패한 시신을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묵묵히 염습을 하며 묻어주었다. 이런 손 요한의 모습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다.



혈당(血黨)과 집회 형태

명도회의 예상 밖 호응에 고무된 주문모 신부의 행보는 부쩍 바빠졌다. 주 신부는 주일마다 명도회의 지부를 돌면서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와 세례성사를 행하였다. 「사학징의」에는 한 동아리의 멤버를 일러 혈당(血黨)이나 동당(同黨), 사당(死黨)이라고 쓴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또 주요 거점 인물의 공초에는 예외 없이 함께 모임을 가졌던 4명에서 10명 내외의 이름들이 나온다.

이합규(李逵)의 공초에, “홍문갑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고, 각처에서 온 여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 늘어앉아 주문모에게 강의를 들었습니다”라고 했고, “또 손인원, 정인혁, 현계흠, 오현달, 김이우 등과 함께 매달 7일에 김이우의 집에 일제히 모여 사서를 강론하였습니다. 작년 6월에 제가 김이우의 집에 갔더니 현계흠과 손인원, 김이우 등이 주문모를 모셔두고는, 첨례날이라고 하며 아래 사랑 벽장 속에 예수상을 걸어 장막으로 가리고, 방석을 깐 뒤 여러 사람이 사서를 강습하였습니다. 김이우 집안의 여인들은 창밖에 있으면서 엿들으며 강습하다가 파하였습니다”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이 기록 중에 매달 7일이라 한 대목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입성모시태명도회목훈」 중 「회내총규(會內總規)」에 “매달 첫 번째 주일을 본회의 기일로 삼는다(每月第一主日, 爲本會之期)”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달 7일에 김이우의 집에서 열린 모임은 다름 아닌 명도회 집회였고, 여기에 거명된 손인원 등 5명은 명도회의 한 지회를 구성하는 멤버였던 셈이다. 첫 보명 후 두 달이 지난 6월 집회 때 이들은 특별히 주문모 신부를 집으로 모셔서 미사까지 드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또 1801년 2월 최필제는 오현달, 충주 아이 구석이(具碩伊), 종현(鍾峴)의 이태량(李太良), 생민동(生民洞)의 이범이(李凡伊) 등과 사서를 강론하던 중에 체포되었다. 이름으로 보아 이들은 모두 앞서 명도회원의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한 신분이 낮은 백성이었고, 멀리 충주 지역에서 온 구석이의 존재가 눈에 띈다. 그는 아마도 충주 쪽에 명도회 지부를 만들려고 수련 과정을 익히던 중이 아니었을까 싶다. 명도회는 이렇듯 계속 분화를 거듭하며 저인망식 전교를 계속하고 있었다.

홍정호는 “4, 5차례나 주문모를 제 집에 맞아와서 사술을 배웠고, 함께한 무리는 손인원, 현계흠, 최필제, 윤현, 박덕신, 최재도 등이옵고, 드나든 여자는 남판서 댁 여종 구월과 홍문갑의 여종 소명, 동의 어미라고 부르는 여자 등입니다”라고 했다. 대부분 대여섯 명의 인원이 모여 공부 모임을 가졌고, 남녀의 구분을 두어 참석했다.



육회(六會)에 대한 오해

「추안급국안」 1801년 10월 9일의 공초에서 황사영은 “육회(六會)는 홍문갑 집, 홍익만 집, 제 집, 김여행 집, 현계흠 집이고, 한 집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명도회에 여섯 개의 지회가 있는데, 다섯 모임의 대표 이름을 대면서, 나머지 한 집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이 모임 장소를 황사영은 육회라고 지칭했다. 이곳은 달레가 앞서 말한 주문모 신부가 정해준 “시내에서 회합을 가져야 하는 장소”에 해당할 것이고, 해당자는 주문모 신부에 의해 임명된 “집회를 주관하는 지도자”들이었을 터이다. 또 앞서 본 「신미년백서」에서 “성 안에 각각 모임 장소를 두고, 각기 회장을 파견하여 나누어 관리하였다”고 한 대목에 대한 부연 설명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황사영이 말한 다섯 집의 집주인은 각 지부의 회장격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곳은 기간 조직에 해당하는 중앙 지부(支部) 격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사실 황사영의 이 언급이 명도회 육회의 성격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이 없지 않다. 당시 서울과 지방에서 활동하던 명도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모임은 적어도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규모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명도회의 지회 모임이 이 6개 지부에 국한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 지회당 5, 6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다면 많아야 36명이다. 이 인원으로 어떻게 큰 변화를 가져오며, 여자가 3분의 2이고 신분 낮은 남자가 3분의 1이었다는 식으로 쓸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볼 때 황사영이 육회의 장소로 지목한 다섯 공간은 각각의 산하에 수많은 지회 모임과 예비 모임 등을 구성해 두고, 구역별로 명도회 보명 작업과 보명단 작성 및 지속적 회원 관리를 집행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일종의 피라미드 구조처럼 하나의 정점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확산되거나, 그물망같이 하나의 벼리줄에 꿰어져 쫙 펴서 물고기를 잡는 식의 시스템을 갖추었던 셈이다.

「사학징의」 중 김일호의 공초를 보면, “매번 첨례일이 되면 교중의 무리들과 함께 육회에 참석하여, 오직 널리 행하는 것을 책무로 삼았습니다”라고 했고, 또 “육회의 첨례에 참석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육회는 명도회의 별칭으로 쓰였다. 명도회를 육회라고 한 것은 집회장소가 6곳이어서가 아니라 명도회가 6회(會)의 체재로 구성되고 운영되어서이다.



명도회의 6회장

명도회의 6회 체재는 그 연원이 중국 명도회에서 왔다. 정황상 조선 명도회의 틀이 중국 명도회의 회규를 그대로 가져왔으니, 그 골간이 되는 6회의 체재를 적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만 조선 쪽의 기록 중에 6회 체재와 6회장의 존재를 언급한 것이 위 황사영의 기록뿐이어서 그 실상 파악이 어려운 점이 있다.

「입성모시태명도회목훈」에 따르면 명도회 조직은 회를 관장하는 신부인 관회신사(管會神司)와 신부를 보좌해 회를 실제적으로 이끌어나가는 6회장이 있었다. 그 명칭은 총추회장(總樞會長), 장서회장(掌書會長), 종무회장(綜務會長), 계우회장(啓愚會長), 부위회장(扶危會長), 성미회장(醒迷會長) 등이다. 이중 앞쪽 3회장은 본부 임원격에 해당하고, 뒤쪽 3회장은 명도회의 설립 목적에 따른 역할별 분과를 맡은 회장들이다.

총추회장은 명도회의 총회장이고, 장서회장은 회의 서기에 해당한다. 명도회원들이 지극히 중시한 보명단의 관리와 제반 기록을 맡았다. 종무회장은 회계와 총무의 역할을 맡아, 명도회의 서무와 재정 관리를 담당했다. 매달 주보의 표식을 제작하거나, 회원을 위한 패성패(佩聖牌) 즉 휴대용 성패 제작 및 명도회 활동에 필요한 각종 기도문과 교리 책자 보급에는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었을 것이고, 이는 회원들의 회비와 헌금으로 마련되었을 것이다.

계우회장과 부위회장, 성미회장은 명도회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위치다. 계우(啓愚)는 어리석은 이를 계몽한다는 의미로, 계우회장은 교리 지식이 없는 교우와 냉담 교우의 권면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 사목위 교육분과 위원장에 해당한다.

부위(扶危)는 위험에 처한 신자를 부조(扶助)한다는 뜻이다. 부위회장은 세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은 어린이에게 대세를 행하고, 병자나 망자를 돌보는 일을 맡았다. 오늘날 연령회나 연도회의 기능에 가깝다. 「사학징의」에서 한덕운 토마스가 사기그릇 장수로 상경 도중 길에서 빈 가마니에 싼 홍낙민의 시신을 보고 조문을 하고, 서소문 밖에 가서 최필제의 시신을 염습한 일은 그가 평소 부위과에 속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훗날 병인박해 당시 「박순집 증언록」에 나오는 장 베르뇌 주교를 비롯 7명의 시신을 염습한 박 바오로 같은 분의 존재도 그러하다. 신유박해 이후 밤중에 몰래 사형당한 사학죄인들의 시신을 반출해 염습하고 매장한 일은 대부분 명도회의 부위과에 속한 신자들이 맡아 행했던 일일 것이다.

성미(醒迷)는 미혹함에서 각성하게 한다는 의미다. 성미회장은 외교인을 권면하여 천주교로 입교시키는 일을 총괄했고, 오늘날 전교분과 위원장의 역할에 해당한다.

「입성모시태명도회목훈」에 따르면, 모든 명도회원은 반드시 계우과(啓愚科)와 부위과(扶危科), 성미과(醒迷科) 중 어느 한 부문에 소속되어야 했다. 소속을 결정하는 것은 총추회장 또는 장서회장이었다. 신부는 보명단이 올라오면 총추회장 또는 장서회장을 파견해서 개별 면담을 통해 그의 달란트에 따라 소속을 결정했다. 면담 시에는 당사자의 학문 소양과 「삼본문답(三本問答)」에 대한 숙지 정도, 세례 절차에 대한 이해와 수행 능력, 외교인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역량 등이 고려되었다.

이들 각 부서의 역할과 활동 사항 및 각종 세부 규정들이 모두 꼼꼼한 세부 조항을 근거로 시행되었다. 앞서 황사영이 말한 육회의 다섯 곳 회소(會所)는 본부 6회장과는 별도로 운영한 중앙 지부 격의 모임 장소였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총추회장인 정약종의 이름이 빠져있는 데다, 종무회장과 장서회장의 경우 본부 총괄 임원이어서 별도로 집회소 운영자의 역할을 맡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한다. 당시 조선 명도회는 주문모 신부의 지도 아래 정약종이 총추회장을 맡고 나머지 5회장이 역할을 나눠 운영하는 집단 지도 체제로 운영되었다. 모든 회원은 자신의 중심 역량에 따라 계우과 부위과 성미과 중 어느 하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이들은 전교 활동에 열심하였고, 이를 위해 기도 생활과 교리 공부 및 봉사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같은 신공(神工) 활동은 얼마 못 가 교회 안팎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신심 단체가 따로 없었던 조선 교회에서 명도회는 그 의미가 단순한 하나의 신심단체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전교 활동과 신앙생활의 지침이 여기로부터 지시되고 하달되며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명도회는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의사 결정권을 가진 최고 기관이었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 교회의 분권화와 평신도 조직의 활성화를 통해 사목의 공백을 메우고, 평신도 중에 지도자를 양성함으로써 차세대를 위한 준비를 갖추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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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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