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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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에 놀라고 소박한 성모자상에 감동하는 대성전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11) 토르첼로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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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제대와 성모자상



베네치아의 랜드마크는 단연 산 마르코 광장이다. 이곳에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종탑 등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함께 있어 일 년 내내 광장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성 마르코 복음사가에게 봉헌된 이 성당보다 오래되고 베네치아 역사가 시작된 성당이 위치한 섬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베네치아는 연간 관광객 3000만 명이 다녀가는 곳이지만 토르첼로 섬까지 찾는 관광객은 그중 1%나 될까. 하지만 로마에 가면 7개의 언덕을 가야 하고, 피렌체에 가면 피에솔레에 가야 하고, 베네치아에 가면 바로 이 토르첼로 섬에 가야 한다. 왜냐하면, 각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약 120여 개의 섬으로 그 중 산마르코 광장이 위치한 섬은 본섬이라고 부른다. 이 본섬을 출발해서 한 시간 남짓 바다 한복판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곳이 베네치아 역사의 시작인 토르첼로 섬이다.



베네치아의 최초 정착 섬 토르첼로


현재 이탈리아 북동쪽에 있는 베네토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틸라가 침입했다”, “훈족들이 쳐들어온다”라는 소식을 듣고 그 지방 주교좌성당으로 몰려든다. 모든 시민이 공포에 질려 사제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무슨 지시라도 내려 달라고 요청하게 되는데 그런 요청을 받은 사제는 시민과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때 하늘로부터 목소리가 들려 왔다. “탑으로 올라가거라, 그리고 바다 쪽을 보아라. 거기 보이는 땅으로 가거라.” 이 내용은 베네치아 초기 연대기에 쓰여 있는 베네치아의 건국에 관한 전설이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이때가 452년이다. 지금의 트레비소 사람들이 토르첼로 섬에 최초로 정착하면서 베네치아의 역사가 시작된다. 23년 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야만인의 침입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 북동쪽의 사람들은 점차 토르첼로 섬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 숫자가 점점 늘어 9세기에는 2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현재 이 섬 거주민은 사제 포함 17명) 그 많은 사람은 주로 염전 사업을 하며 바닷길을 개척해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부를 쌓기 시작하자 그들은 섬 곳곳에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현재 이 섬에 성당은 딱 두 곳뿐이지만 그 당시에는 20여 개의 성당이 있었다. 오늘 소개하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Basilica di Santa Maria Assunta)은 이 20여 개의 성당 중 한 곳이며 오늘날까지도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한 성당이다.


▲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제단과 이코노스타시스

▲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전경.



복원작업 통해 드러난 아름다운 역사

대성전의 역사는 639년부터 시작한다. 그 후 826년 성당의 규모는 크게 확장되었으며, 1008년에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성모 승천 대성전)이라고 명명되어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다. 그 후 베네치아의 역사와 함께했던 이 성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며 폐허로 변해갔다. 12~13세기에 유행했던 흑사병과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던 소금의 생산이 점점 늘어나는 늪지로 인해 줄어들면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현재 베네치아 본섬으로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제2의 베네치아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95년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복원 덕분이다. 오랜 발굴 끝에 1954년 제대 주변에서 하나의 비석이 발견되는데 현재 제대 앞에 놓여있는 이 비석에는 이 성당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회중석의 두 독서대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이코노스타시스

중앙광장에서는 이 성전과 산타 포스카 성당(Chiesa di Santa Fosca, 11세기), 그리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7세기)이 있으며 뒤를 돌아보면 두 개의 부속 건물이 남아있다.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장식이 없는 정면이 12개의 기둥으로 아치를 이루며 대성전 현관으로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입구는 13세기에 완성되었으며 현관을 지나 성당으로 들어서면 두 번 놀라게 되는데 첫 번째는 명성에 비해 다소 소박하고 크지 않은 규모에 놀라게 되고, 그 실망스러운 놀라움에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하게 되는 모자이크 장식에 두 번째 놀라게 된다. 성당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기본으로 하며 18개의 코린토 스타일의 기둥들이 세 개의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회중석에서 제대가 있는 제단을 향해가면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층을 달리하며 나란히 설치된 두 개의 독서대를 발견한다. 다른 성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로마에서는 주로 성가대석의 양쪽에 위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래쪽에 서간을 낭독하는 독서대가 있고 위쪽에는 복음을 선포하는 독서대로 구성되어있다.

제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이 가운데 높이에 설치된 특이한 이코노스타시스를 지나야 한다. 보통 동방 정교회에 가면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동방 정교회에서는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지만 보통 로마 교회에서는 성상 칸막이, 성화로 이루어진 벽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구약의 성전에서 증언 궤를 모셔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칸막이 휘장(탈출 26,33)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코노스타시스를 지나면 주제대가 있고 이 제대 밑에는 성 헬리오도로(+390)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인은 알티노(현재 트레비소)의 초대 주교였는데 도시가 야만인의 침략을 당하자 알티노 주민과 함께 토르첼로 섬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한다.



육화의 신비 드러내는 성모자상


이 제대는 성당의 중앙 앱스로 이어지게 되는데 중앙 앱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빛으로 인해 제대가 더욱 빛나 보인다. 앱스 중앙에는 이 성당의 주인공인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을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성모 성당에서 성모님이 착좌해 계시거나 천상의 모후관을 받는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곳에서는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며 콘스탄티노플의 수호 성인인 ‘하느님의 어머니’ 이콘이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칠리아까지 어지간히 유명한 모자이크는 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소박함에 조금은 허전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의 놀라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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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2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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