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그림은 은혜씨를 일으켜 세운 힘… “작가로 불리는 게 좋아요”

[타인의 삶] (7)발달장애인 작가·배우 정은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정은혜(왼쪽) 작가와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같은 사람은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영화 ‘니얼굴’로 알려진 정은혜 작가. 발달장애인인 정 작가는 틀리지 않다는 것을,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의 말과 표정, 행동 하나하나는 한 곳에만 머무르던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정은혜(마리아, 32) 작가와 어머니 장차현실(아기 예수의 데레사, 58) 작가를 만났다.



은혜씨의 틈

경기도 양평에는 예술가들이 참 많이 자리 잡았다. 예술가들이 모인 이곳에 정 작가도 있다. 알려준 주소를 찾아 정 작가의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작업실 문 옆에 걸린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1974년 한 발달 장애인의 외침)’라고 쓰인 작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큰 창을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큰 창 너머로는 산과 강이 내려다보였다. 화창한 날씨까지 더해지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곳은 발달장애인 청년 12명이 예술로 노동을 하는 창작스튜디오 ‘틈’이다. 이쪽과 저쪽 사이의 틈, 다른 사람과 나 사이의 틈, 그리고 세상의 틈을 메우자는 의미를 담았다.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예술활동이 일로써 인정받고 전시를 통해 비장애인들과 교류하며 사회적 관계를 확장해나가는 곳이다.

정 작가는 자신의 공간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사진도 찍어요? 그러면 은혜씨 메이크업 해야겠네.”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가 정 작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기자가 ‘정 작가를 왜 은혜씨라고 부르냐’고 묻자 장차현실 작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정 작가를 성인으로 대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메이크업이 끝난 후 정 작가, 장차현실 작가와 마주 앉았다.

 

 

 

 

 

 
▲ 정은혜 작가가 전시회 준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은혜씨를 바라보는 시선

“스케줄 때문에 바빠요. 좀 피곤하지만 좋아요.” (웃음)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정 작가가 웃으며 답했다. 정 작가는 요즘 스케줄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가 끝난 후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영화 개봉 후 무대 인사, 전시, 출판과 관련해서도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정 작가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길을 가다가도 식당에 가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사람들은 정 작가를 알아본다. “군산에서 은혜씨와 목욕탕을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자리로 몰려와서 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옷을 다 벗고 있는데 말이죠.” 장차현실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장차현실 작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칭찬과 기대를 받고 있다”며 “발달장애인들에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이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은혜씨가 총대를 멘 것 같다”고 했다.



은혜씨를 일으켜 세우다

2013년 2월 27일. 장차현실 작가는 이날을 잊을 수 없다. 이날은 정 작가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날이다. “제 화실에서 잡지 광고를 보고 스프링이 달린 갱지 노트에 연필로 그린 그림이었어요. 그 그림을 보며 은혜씨가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그 이후로 은혜씨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죠.” 정 작가가 지금까지 그린 사람은 4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20대 정 작가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은혜씨가 20대가 되니 갈 데가 없었어요. 갈 데가 없으니까 은혜씨가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어요. 그 방을 저희는 동굴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퇴행이 오기 시작했죠.” 정 작가가 마음의 문을 닫은 후 틱장애, 시선 강박, 조현병 등이 찾아왔다. 그의 그런 모습은 가족에게 큰 우울감을 줬다. 장차현실 작가는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족은 그 장애인의 삶이 어떤가에 따라서 나머지 가족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나서부터는 정 작가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도 바뀌었다. “이제 살겠죠 뭐. 이제 살겠어요.”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씨가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의욕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볼 때 마지막 카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래서 제가 저의 것을 다 던지고 은혜씨를 지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림은 동굴에 있던 은혜씨를 동굴 밖으로 나와 일으켜 세운 힘이자 가족을 살게 한 힘이었다.



은혜씨, 날아오르다

2020년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정 작가가 개인전을 할 때였다. 노희경 드라마 작가가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새로 쓰는 드라마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인이 등장하면 좋겠는데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인터뷰 시간이 부족했고 노 작가 작업실에서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인터뷰가 드라마 캐스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처음에는 작은 역할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대본을 받아보니 비중이 커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깜짝이야’가 연속적으로 터진 거죠.” 이후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되고 영화 ‘니얼굴’ 개봉, 또 정 작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일상이 공유되면서 ‘정은혜’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정 작가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은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정 작가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정 작가의 개인전 제목은 ‘포옹’이다.



또 다른 은혜씨를 위해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씨가 자기 시간을 갖고 다시 자기 삶을 살게 될지 몰랐다”며 “은혜씨를 막연히 슬프고 힘든 존재로만 여겼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존재를 인정하면서 길을 열어줬다면 이렇게 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어떤 존재든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는데 자기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제 삶과 은혜씨의 삶을 같이 가긴 어려웠어요. 어느 하나는 던져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의 삶을 던졌어요. 처음에는 그런 게 슬펐는데 지금은 저 자신도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장차현실 작가는 “발달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 숨어있고 드러나지 않고 배제돼 있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을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기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 가능성이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장차현실 : 작가라고 불러주는 게 좋아?

정은혜 : 좋아. (너 스스로 멋진 사람이 된 거 같아?) 응. 엄마도 멋져.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8-0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0

루카 2장 19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새겼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