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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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특집 / 희망의 빛을 찾아서] (3) 보호아동들의 보금자리 ‘앤하우스 그룹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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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정발산동 한 주택가. 이곳에는 부모에게 버려지고, 학대로 방임된 아이들이 가족을 이뤄 지내는 ‘앤하우스 그룹홈’이 있다. 성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아이들은 앤하우스의 엄마, 고모, 이모들의 보호 아래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앤하우스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는 미래를 그린다. 시끌시끌 북적북적한 앤하우스의 저녁을 찾았다.



위기에 놓인 아이들 위한 보금자리

저녁 6시가 되자 도어락을 빠르게 누르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오자마자 점퍼와 가방을 쏟아 놓고, 방으로 들어가 뿅망치 전쟁을 한다. 아이들이 흩트려 놓은 짐을 정리하며 “간식 먹게 손부터 씻으라”고 외치는 엄마의 모습이 여느 집안과 다르지 않다. 쌍둥이들은 미술학원에서 만든 성탄 장식을 들고 와 엄마에게 재잘재잘 자랑을 한다.

앤하우스는 남자 그룹홈으로 고등학생 1명, 초등학생 5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일시보호소에 머물다 장기 시설로 옮기며 이곳에 왔다. 아이들이 엄마라 부르는 이는 이시은(데레사·56) 원장. 3명의 보육사는 각각 큰이모, 작은이모, 고모라 불렸다.

그룹홈은 주로 기관이나 단체에서 운영한다. 개인이 운영하려면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허가도 쉽지 않다. 이 원장은 10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우연한 기회에 그룹홈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실존적인 위기에 놓인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운명처럼 이끌렸다”고 말했다. 7년 전 혼자 힘으로 앤하우스를 시작한 이 원장은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될 주택을 구하는 일부터 처음 2년간 운영비를 사비로 충당했다. 지금은 운영 평가를 거쳐 지원금을 받는다. 이 원장은 매일 이곳으로 출퇴근하고, 보육사들은 3교대로 숙식하며 거주근무를 한다. 고아였지만 당찬 어른으로 성장한 ‘빨간 머리 앤’을 생각하며 이름 붙인 앤하우스에는 한 명 한 명 소중한 가족들이 채워져 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온 6명은 각자 아픈 사연을 지녔다. 아빠가 입대를 하며 혼자가 된 아이, 15살 미혼모가 낳은 아이, 아빠는 교도소에 가고 엄마가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아이…. 살가운 11살 현석이는 애어른 같은 말로 마음을 찔렀다. “전에 살던 집은 맨날 문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덧셈 뺄셈만 못해도 새벽 내내 ‘엎드려뻗쳐’를 시켰어요. 여기 온 거는 운이 좋은 거예요.”

불안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때로 마음 속 상처를 폭력적으로 표출한다. 몇몇은 정서 불안과 스트레스가 유발한 ADHD 탓에 약을 먹는다. 이 원장은 “ADHD처럼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마음이 아프지만, 온전히 치유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다독여 줄 것”이라고 했다.

머리가 커지며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고모 성경숙(사라·62)씨는 “사고를 치면 학교에 쫓아다니고, 새벽에도 신고를 받고 지구대를 수없이 갔다”고 했다. “힘들지만 가족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막내 성민이는 보행이 점차 불가능해지는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해외 입양 직전 건강검진에서 문제가 발견돼 입양을 못 갔다. 여덟 살 치고 몸집이 작고 이미 걸음걸이도 불편해지고 있다. 이 원장은 모든 것을 감수하며 성민이를 받아들였고 정성으로 돌본다. 그 마음을 아는지 성민이는 재롱을 피우며 이 원장을 웃게 했다.



함께 맞춰가는 발걸음

학습지를 푸는 시간. 학습지를 끝내고 게임을 하기 위해 아이들은 초집중 모드가 됐다. 현석이는 책상에서 머리를 싸매다가 거실에 있는 큰이모를 찾아와 풀이를 물어보기를 반복했다. 큰이모 이정순(57)씨는 학습지를 꼼꼼히 검사하고선 “게임은 조금만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는 “인간은 잔소리로 이루어지는 존재이니 애들 키우며 잔소리를 끊을 수 없다”며 웃었다.

잔소리도 자연스럽게 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이 원장과 보육사들은 많은 애정을 쏟았다. 부모와 애착 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고, 어른에 대한 신뢰가 없는 아이의 마음을 여는 건 쉽지 않았다. 이씨는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이 일을 할 수가 없고, 마음을 오롯이 내줘야 한다”며 “예전에 제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앤하우스 자식들에게 다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존감도 높고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아이들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아이들은 힘듦을 잊게 하는 기쁨도 가져다준다.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면서 학급회장도 되고, 급식에서 맛있는 팩 음료가 나오면 안 먹고 이모 주려고 가져왔다고 할 때 뭉클하죠. ‘우리가 서로 잘 맞춰가고 있구나’, ‘마음을 열어주고 있구나’ 싶어서요.”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

앤하우스의 궁극적 목표는 상처받은 아이들을 건강한 어른으로 자립시키는 일이다. 가정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인간을 만드는 첫 자리가 되도록 두 달마다 가족여행을 떠나고, 남부럽지 않게 문화생활도 자주 한다. 이 원장은 “아이들은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한 가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도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주는 일에도 힘쓴다. 남들 배우는 태권도, 미술, 영어, 수학, 논술뿐 아니라 흥미를 보이는 건 뭐든 가르친다. 쉴 새 없이 학교와 학원을 왔다갔다하며 픽업해야 하고, 후원이라도 받으면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서류지옥’도 두렵지 않다.

앤하우스를 시작하며 처음 만났던 15살 장남은 7년을 머물다 성인이 되어 최근 자립했다. 눈물로 떠나보내면서도 착하고 씩씩하게 자라준 것이 이 원장에게 남은 아이들을 키워낼 용기를 줬다.

이 원장은 아이들이 밖에서도 따뜻한 시선을 받길 바랐다. 또래들의 놀림과 그룹홈 아이들을 편견으로 바라보고 낙인찍는 부모들도 있기 때문. 그는 “그룹홈이 더는 음지에 있지 않고,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한테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아기 예수님과 같은 존재예요. 연약한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홀로 설 때까지 뒷받침해 주고 따가운 시선으로 주눅 들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싶어요. 그게 운명처럼 만난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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