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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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16세 교황, 파리외전에 선교 맡기고 조선대목구 설정

[한국 교회 그때 그 순간 40선] 11. 브뤼기에르 주교와 조선대목구 설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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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조선대목구 설정 칙서.


포교성성,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 제안

교황청 포교성성으로부터 조선 선교의 제안을 받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현실적으로 그 일이 실행 가능한지 먼저 파악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파리 본부의 입장은 우선 조선 선교지를 맡기에는 선교사 인원이 부족하고 재정적 후원도 불확실하며, 가장 큰 문제는 조선에 들어갈 방법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의 운용방식은 단일 총장제에 의한 최종 결정방식이 아닌, 회칙에 따라 본부 지도자들과 각 지역 대목구장 주교들의 협의로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본부는 일단 조선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각 지역 선교사들에게 공동서한을 보내 의견을 구하고자 했다. 본부는 1828년 1월 6일 공동서한을 보내 각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면서 조선 교우들의 불쌍한 처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혹시라도 조선 선교를 위한 희망적인 방법이 있는지 의견을 요청했다.

“… 당분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불쌍한 교우들에게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도록 천주께 기도하는 것과 마카오에 있는 우리 대표부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여 이 어려운 계획에서 주의할 것이 무엇이며 희망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알려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서만자에서 조선으로 출발하기 전 1835년 9월 28일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

브뤼기에르, 조선 선교의 희망적 대안 제시

조선 선교에 열망이 있었던 샴(현 태국)대목구의 브뤼기에르 신부는 이 서한을 다각적으로 검토해보고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편지를 써 내려갔다.

“1. 우리는 기금이 없다. 그러나 사실상 전교회에서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경비를 충당할 것 아닙니까? 게다가 몇 해 동안은 포교성성에서 보조금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내일 닥칠 일을 너무 걱정하여 섭리를 모욕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주님께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하여 주실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 신학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무엇을 거부한 적이 있었습니까?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였던 시기에 우리가 맡고 있던 선교지들 가운데 하나라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 우리 하느님의 힘이 약해지셨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신앙과 확신이 줄어들었다는 말입니까?

2. 우리는 선교사가 없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교훈이 되는 새 서한집」의 ‘조선’ 항목에 들어있는 기사들을 모두 인쇄하고, 거기에다가 이 열심한 조선의 신자들이 여러 번에 걸쳐서 우리 교황 성하께 올린 편지들을 첨부하십시오. …그들의 열의를 자극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한 명을 구하면 열 명이 달려올 것입니다.



불쌍한 조선 사람들만큼 절박하지는 않아

3. 다른 선교지에도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저 불쌍한 조선 사람들만큼 절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선교지 전체를 놓고 본다면 신부 한두 명쯤 줄어든다고 결코 현저한 공백 상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림받았던 선교지로서는 이 두 명의 신부도 헤아릴 수 없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4. 그 나라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다. 이 점이야말로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에서 가장 그럴듯하다는 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결국 어떤 계획이 어렵다고 하여 그것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북경에서 출발한 중국인 신부 한 분이 조선에 들어가 박해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여러 해 동안 성직을 수행하다가 영광스러운 순교로 그의 과업을 완수하였는데, 사천(四川)이나 산서(山西)에 파견된 유럽인 신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 그렇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이런 생각들 때문에 중국 해적선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였던가요? … 사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사도들과 그들의 계승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라고 특별히 명령하셨을 때에 조선을 빼놓으셨습니까? …뭐라고요! 지극히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자마자 경배하며 사랑하고 섬겼던 조선 사람들에게 갑자기 엄하고 매정한 하느님이 되셨다는 것입니까?

5. 마지막 이유가 남아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계획을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 포교성성에는 장래에 관해서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신부 1~2명 정도를 보내겠다고 제안하십시오. … 그러나 이런 위험한 사업을 기꺼이 맡고자 하는 신부가 누구이겠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소조폴리스의 주교님(샴대목구장)은 아무리 당신의 대목구에 선교사들이 많이 있기를 원하신다더라도, 불행한 조선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 사제들 가운데 한 명을 기꺼이 내놓으실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여러분이 이 선교지를 포기하시면, 저 불쌍한 새 신자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위안도 얻지 못한 채 좌절하게 되어, 용기를 잃고 그들의 낡은 미신들 속으로 다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희망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중권 223~231쪽에서 발췌)
브뤼기에르 주교는 끝내 조선에 입국하지 못하고 1835년 10월 20일 중국 내몽골 마가자 교우촌에서 선종했다. 사진은 마가자성당 성직자 묘지에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 무덤과 묘비. 그의 유해는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해 이장돼 서울 용산성직자 묘역에 안장돼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브뤼기에르 주교, 조선으로 오다가 선종

이 한 통의 편지는 조선 선교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완전히 역전시켰다. 브뤼기에르는 포교성성에도 편지를 보내 조선 선교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중에 교황청은 브뤼기에르를 샴대목구의 부주교로 임명했고, 브뤼기에르 주교는 샴대목구보다 더 시급한 조선 선교지를 자원했다. 1831년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가졌던 카펠라리 추기경이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되면서, 그해 조선대목구가 설정됐다.

그런데 파리 본부는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의 독단적인 행동을 묵과하지 않고, 파리외방전교회 탈퇴로 간주했다. 소 주교는 오해를 풀기 위해 포교성성과 파리 본부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독단적인 행위를 사과하고, 조선 선교지를 위해 이해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파리외방전교회는 조선 선교지를 맡으면서 포교성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선을 향해 떠난 브뤼기에르 주교는 페낭-싱가포르-마닐라-마카오-복안-히아푸-남경-직예-태원부-서만자-마가자 등 긴 여정을 거치면서 1835년 10월 20일 병환으로 선종했다.
 
<가톨릭평화신문-한국교회사연구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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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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