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마카오 떠난 지 6개월여 만에 첫 선교 임지 방콕에 도착하다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9. 리고르를 거쳐 방콕에 도착하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브뤼기에르 신부 일행은 리고르 임금의 배려로 리고르에서 배를 타고 17일간의 항해 끝에 방콕항에 도착했다. 사진은 플로랑 주교가 거주했던 방콕 차오프라야 강 언저리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 플로랑 주교가 활동하던 당시 성 십자가 성당은 목조 건물이었다. 구글 캡처


리고르 임금 배려로 방콕까지 배로 이동

탈롱(Thalon, 오늘날 파탈룽)에서 마침 순시차 이곳에 온 리고르 왕국의 임금을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300명의 호위병과 후궁 25명을 거닐고 저를 맞았습니다. 리고르 임금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는 것 말고는 훌륭한 분입니다. 호감을 주는 인상이고 선의와 자애가 넘치는 분입니다. 그는 상냥하고 인기가 있으며 외국인들을 반깁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분이라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는 불의와 사기를 엄히 벌합니다. 또 수시로 여러 지방을 순시하고 요새를 세우며 땅을 개간합니다. 백성은 임금을 사랑하고, 리고르 왕국에 오는 외국인들은 임금을 존경합니다.

저는 임금에게 “폐하께서 저의 선임자인 페코 신부를 환대하신 사실을 유럽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페코 신부와 같은 사명을 받고 고인이 된 그의 자리를 채우려고 파견된 사람입니다. 폐하께 개인적으로 경의를 표하고, 폐하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 바닷길 대신 육로로 샴까지 가려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금은 제 말에 크게 기뻐하면서 “리고르에서 방콕까지 가는 배 한 척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관리들에게 “신부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 길에서나 리고르에서 부족함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임금에게 리고르에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청했습니다. “폐하께서는 페코 신부가 리고르를 지나갈 때 그를 초대하시고 리고르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시어 성당을 세우는 일을 돕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페코 신부는 폐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그는 그만 죽는 바람에 이를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제가 폐하의 뜻을 받들고 싶습니다.”

제 청을 들은 임금은 몹시 난처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리고르 임금은 얼마 후 제게 신하를 보내 “청을 곧바로 허락하지 않고 망설인 데 대해 언짢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까운 시일에 방콕에 가서 샴 임금 라마 3세와 이 문제를 논의하고 그가 동의한다면 자신이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리고르로 가는 여정 중 중국인 신입 교우가 강을 건너다 악어에게 물려 죽을 뻔하고, 모두가 늪에 빠져 2시간 이상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샴 대사가 리고르 포구에서 저희를 맞았습니다. 그는 사방이 막힌 초가를 저희에게 숙소로 제공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숨쉴 수 있는 방을 달라”고 청하자, 그는 “큰 인물은 천한 사람들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대사가 떠난 후 우리는 벽을 둘러친 천을 조금 떼어내 공기구멍을 만들고 나서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리고르에 도착 후 17일 동안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이 와중에 샴 대사가 코끼리를 타다 떨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대사가 어느 정도 거동할 만큼 회복되자 우리는 1827년 5월 20일 배를 타고 방콕으로 갔습니다. 리고르 임금의 배려로 리고르에서 방콕까지 배로 이동했습니다.
소조폴리스의 명의 주교이며 샴대목구장인 마리 에스프리 플로랑 주교.


항해 기간 한증막 같은 선상 부엌에서 생활

저와 일행 여섯은 항해 동안 선내 부엌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부엌은 불결할 뿐 아니라 통풍이 제대로 안 돼 온종일 연기로 꽉 차 있고 도마뱀과 파리 떼가 설쳐댔습니다. 게다가 부엌에는 병자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한센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증막 같은 부엌에서 숨이 막혀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갈라치면 곧바로 샴 대사가 “온갖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거룩한 교회의 사제가 우상 숭배자들의 눈에 띄어 명예를 잃는 것은 치욕스럽다”며 힐난했습니다. 선상 부엌은 연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우리는 항해 17일 만인 1827년 6월 4일 방콕에 도착했습니다. 이날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었습니다. 1826년 12월 11일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서 선교 임지를 배정받고 마카오를 떠난 지 6개월 보름여 만에 비로소 선교지인 방콕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방콕항에 마중 나온 교우들과 함께 주교관으로 갔습니다. 주교관은 네 개의 들보로 지붕을 받친 보잘것없는 초가였습니다. 가구라야 침대로 쓰는 판자 하나, 나무 의자 몇 개뿐이었습니다. 샴대목구장 마리 에스프리 플로랑(Marie Esprit Florens, 1762~1834) 주교님이 주교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교님은 천에 초를 입힌 모자를 쓰고 맨발에 낡은 자색 수단 차림이었습니다. 64세의 주교님은 저를 보자 기뻐 어찌할 줄 몰라했습니다.

플로랑 주교님은 몹시 검소한 분이십니다. 옷이라고는 낡은 수단 한 벌뿐입니다. 주교님의 차림새는 1년 내내 한결같습니다. 주교님은 프랑스와 교황청에서 지원받은 얼마 안 되는 선교기금을 사제들과 신학생,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썼습니다.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제게 ‘인도의 정원’이라고 소개할 만큼 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제게 “며칠 전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샴대목구는 샴과 케다(말레이시아 북서부 지역)·파라·리고르 왕국의 모든 지역과 라오스 왕국 일부를 관할하고 있습니다.(필자 주-오늘날 태국·말레이반도와 그 북쪽 모든 지역이 해당) 이렇게 광활한 교구를 노쇠한 프랑스인 주교 1명과 현지인 사제 3~4명이 사목하고 있었습니다.



불교 국가임에도 방콕에 4개의 성당 세워

방콕에는 4개의 성당이 있습니다. 1674년에 세워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 1770년에 봉헌된 성 십자가 성당, 1786년 완공한 묵주의 성모 성당, 1821년 축성한 성모 승천 성당입니다. 성모 승천 성당은 플로랑 주교님께서 지으신 성당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성 십자가 성당에서 주로 거주하셨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샴대목구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눈길을 끌지 못하는 선교지입니다. 아마도 불교와 이슬람의 교세가 강한 게 그중 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샴 왕국은 불교 국가이지만 신앙의 자유가 보장돼 있습니다. 덕분에 말레이반도 일부에선 주민 대부분이 무슬림인데도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방콕의 4개 성당에서는 장엄한 전례가 봉헌되고, 화려하고 장중한 성체 거동 행렬도 거행됩니다. 방콕의 교우들은 사제들을 존경하고 “참신앙을 위한 희생은 고통스럽지 않다”고 고백할 만큼 신앙심이 돈독합니다.

샴대목구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저는 지금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는 선교사가 모자랍니다. 총장 신부님! 선교사들을 보내주십시오. 외교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출 사람이 없어 미신 숭배의 어둠에 파묻혀 사는 수많은 외교인들을 볼 때면 피눈물이 납니다. 총장님께서 당장 선교사를 보내주실 수 없다면, 적어도 추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이렇게 빌어주십시오. 젊은 선교사들을 많이 부르시어, 저희와 함께 일하게 하시고 저들의 열성으로 저희 열의를 타오르게 하시며 저들의 성공으로 저희 용기를 북돋아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2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7

신명 30장 16절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