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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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제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

[타인의 삶] (22) 연기자 지진희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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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지진희씨는 “좋은 연기자가 될 욕심은 없지만 더 크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끌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황하던 20대 장기기증 서약
대형 교통사고에도 몸 안 다쳐


할머니 방 성모상 보며 자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것을 채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소리를 듣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면서 나를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죠. 그러면 내 안에 좋은 것이 가득 차, 연기를 할 때 좋은 연기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배우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에 적용해도 좋을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청소부가 되고, 좋은 사람이 좋은 선생님이 되며, 좋은 사람이 좋은 요리사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도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내 안에 좋은 것을 채우려 합니다. 물론,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큰 좋은 것이지요.”

- 2024년 7월 28일자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 나만의 연기 비결’ 중에서-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당하고 11년 만에 건물주로 나타난 남편. 빈털터리였던 남자가 수십억대 자산가가 되어 아내와의 재결합을 꿈꾸지만 딸의 반대에 부딪힌다. 한때 가족이었던 이들이 다시 가족이 되어 사랑하려면 얼마나 깊은 반성과 노력, 눈물이 필요한지를 몸으로 보여준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가족으로 만나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이야기. 최근 종영한 JTBC ‘가족X멜로’ 드라마에서 남편 변무진을 연기, 코미디와 로맨스를 오가며 활약한 배우 지진희(요한)씨를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의 양육환경과 저출산 문제를 조명한 cpbc 특집다큐멘터리 ‘시간제 엄빠의 나라’ 내레이션 녹음차 방문했다.



13년 전 아내와 함께 세례받아

“극 중 변무진은 일단 아내와 가족을 되게 사랑하죠. 저는 그걸 책임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사업이 많이 망했지만, 그것 또한 가족을 위해 하다가 그렇게 됐거든요. 가족들은 너무 힘들었고, 결국 이혼을 당하게 되는데 변치 않고 돌아와 사랑하려는 그 마음이 되게 매력적인 캐릭터죠. 가족들이 자신을 내치는 데도 끝까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인 부분도 있고요.”

지진희씨가 아내와 함께 세례를 받은 건 할머니의 신앙도 뒷받침되었지만, 아들을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진학시키면서였다.

“지금 아들이 고3이니까 13년 전이었겠네요. 아내가 인성교육을 잘하는 학교에 아이를 진학시키고 싶다고 해서 ‘그럼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톨릭 신자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고, 2011년 세례받게 됐어요. 물론 할머니의 신앙으로 가톨릭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제가 되려고 준비하셨다고 했는데 무슨 사건으로 못하셨다고 들었어요. 원래 사제가 되려다 안 되면 고난을 주시잖아요. 엄청난 고난을 받으셨죠.”(웃음)



서울주보에 용감하게 신앙 고백

인터뷰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그의 나지막하고 따뜻한 언어에 담긴 호기심과 유머·엉뚱함이 잔잔하게 빛을 발했다. 그는 지난 7월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요청으로 서울주보에 글을 통해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다. 삶에서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 우연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큰 일들을 회상하며 그의 삶에 알알이 박힌 하느님 사랑에 대한 고백을 녹여냈다.

“저는 어떤 일을 할 때나 행운아였거든요. 그래서 되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죠. 하느님과 늘 거의 대화하듯이 이야기해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네, 이유가 있겠죠. 없으면 알아서 하세요’(웃음) 하면서 그냥 그렇게 이야기해요.”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지씨는 광고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 후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 보조를 하다 배우로 데뷔했다. IMF가 닥칠 무렵 회사를 나온 후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고, 2003년 드라마 ‘러브레터’를 찍으며 대중에 알려졌다. 당시 러브레터는 이뤄질 수 없는 가톨릭 사제의 사랑 이야기였고, 그는 사제의 라이벌이자 친구 역할을 맡았다. 당시 드라마 촬영을 하며 드라마 자문을 맡았던 한 사제와 나눈 이야기가 신부와는 처음 얘기를 나눈 때로 기억한다. 이후 그는 드라마 ‘대장금’의 민정호 종사관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도 삶의 굴곡을 거쳤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시절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

“고속도로에서 차가 가드레일에 부딪혀 돌면서 덤프트럭 세 대와 부딪혔어요. 근데 차가 가드레일에 부딪히고 도는 순간부터 슬로우 모션을 경험했어요. 앞에서 트럭 3대가 빵빵거리면서 오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죽는 거구나’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두렵지 않고 평화롭더라고요. 차는 폐차 수준으로 망가졌죠. 그런데 저는 티끌 하나 안 다친 거예요. 구급대원과 경찰들이 와서 ‘차가 이렇게 망가졌는데 어떻게 사람이 안 다칠 수 있느냐’며 놀라서 갔어요.”

 

 

 

지진희씨는 2011년 서울 서초동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당시 교리를 가르친 인연으로 올해 4월 이경상 주교 서품식에 참석해 이경상 주교와 사진을 찍고 있는 지진희씨. 지진희씨 제공


하느님은 가장 큰 에너지

지진희씨에게 하느님은 가장 큰 에너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방에 있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사진과 성모상을 보며 자랐다.

“제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이에요. 사람은 상황이 어렵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지면 마음이 약해질 수 있어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하지만 하느님한테는 그런 상처를 받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고난이 올 때마다 ‘위’에다 대고 이야기는 했어요. ‘왜 나한테 이런 고난을 주느냐’고요. 하지만 한 가지, 하느님이 나를 굉장히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거든요.”

그는 방황하던 20대 때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됐는데 제가 이 세상에서 별로 뭐 하는 일도 없는 거 같았어요. 그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을 보곤 ‘아, 나는 이름도 못 남길 거 같고, 가죽도 못 남길 거 같은데 뼈라도 남기자’는 마음으로 장기·시신 기증에 서약했죠. 좋은 일이니까요.”

그는 요즘 새벽에 성당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복사를 서는 초등학교 6학년 둘째 아들을 데려다 주기 위해서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복사를 서겠다는 거예요. 말렸죠. 너도 힘들지만 우리도 힘들어. 그래서 (하느님께) 물어봤죠. ‘이게 당신의 뜻입니까?’ 물론 대답은 없죠.(웃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기특하더라고요. 까불긴 하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며 본받아야겠구나 생각하고요.”



거절한 작품서 스타 배출될 때 뿌듯

지씨는 최근 TV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해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을 밝혔다. 시간이 되면 거의 대부분 캐스팅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응한다. “거절한 작품 중에 굉장히 잘된 작품이 많고, 거기에서 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면서 “그걸 보면 뿌듯하다”고 밝혔다. “연기를 관두려 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해서 잘된 작품도 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순서대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거절하고 나서 후회한 작품은 없다”고 했다. 그는 시간을 아껴쓰고 싶어 뛰어다니기도 해봤고, 세상의 전쟁이 말로 시작된다는 깨달음으로 3개월간 묵언 수행도 해봤다.

“좋은 연기자가 될 마음은 없거든요. 다만 연기는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 중에 제가 하고 있는 일인 거죠. 연기에 목숨을 걸고, ‘내 연기가 최고다’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합니다. 물론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생각이란 게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요. 그냥 더 크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씨는 “그래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기보다도 나중에 누군가가 지진희를 생각했을 때 ‘참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 또 한가지 욕심을 내면 ‘약간 재미있었어’라고 하면 더 좋겠죠?”(웃음)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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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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