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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마음 헤아리는 자식의 사랑

[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 생활] (18) 내려가는 사랑, 올라가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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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한 시간보다 떨어져서 생활한 시간이 더 길다 보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서먹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살아계실 때 잘해 드려라. 떠나시면 후회한다”는 말을 주변으로부터 수없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안부는 항상 뒷자리에 놓는 자신을 봅니다. 이해해주실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바쁠 텐데 전화해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건강을 챙겨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다리를 쩔뚝이며 걷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여행을 가고자 3일간의 제주도 여행 일정을 잡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차를 타고 내릴 때, 관광지를 산책하며 어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면서도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이 아련하고 낯설어 당혹스러웠습니다.

제주도에 왔으니 좋은 곳도 많이 가보고 맛있는 것도 더 사드려야겠다고 계획했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관광지를 검색하며 이곳이 왜 유명한지를 설명해 드리면 어머니는 관심사가 다르다는 것을 기분 나쁘지 않게 눈치를 보며 말씀하십니다.

“정말 멋진 곳이네요. 그런데 가까운 성당은 어디에 있나요? 미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매일 가는 곳이 성당이신데, 여행 와서는 기도와 하느님 생각을 잠시 내려놓으면 안 될까요?”
“에고~ 수녀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머니, 저랑 있는 동안은 기도 금지입니다! 묵주를 손에서 내려놓고 자연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반강제적으로 냉담(?)을 종용한 날 일정을 마치고 새벽에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더니, 창문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기도 책을 펴가며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딸이 행여 잠에서 깰까 봐 전등을 켜지 않고 달빛에 의지하며 침침한 눈을 비벼가면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기도가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일상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께 어떤 곳이 가장 멋있고 좋았는지 여쭈었더니 제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꿈만 같고 행복했어요. 하느님께 봉헌한 딸을 며칠간 저에게 빌려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오다가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부모님을 보살펴야 한다는 삶의 무게감으로 가족 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합니다. 형제간에 책임을 떠넘기며 우애가 멀어지기도 하지요. 노인이 방치되어 있다며 방임으로 신고된 사례를 떠올려 보면 자녀들의 이기심으로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를 버리는 자식은 종종 있어도,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드뭅니다. 행여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봐, 자식의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어르신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느낄 뿐, 삶의 무게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왜 ‘내리사랑’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올라가는 사랑’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부모가 되어 부모 마음을 알게 되고, 노인이 되어 노인의 마음을 알게 되니 항상 뒤늦은 후회만 남게 됩니다.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후회 없는 사랑을 하기 위하여 자녀는 부모를, 부모는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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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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