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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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이 머무는 곳에 사랑이 있고, 예수님이 머무신다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63. 우리의 눈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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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 있는 곳에 눈길도 있다. 우리의 눈길은 어디에 가 있는가? OSV

매일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직장과 집 사이 그 어떤 길일 것이다. 그 길은 눈 감고도 갈 정도로 익숙하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은 인터넷 검색이나 누군가의 안내를 받더라도 헤매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한다. 또 볼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가는 길도 있고, 지루하고 멀게 느껴지는 길도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매일 길을 나선다. 때로는 혼자서 혹은 같이.

그리고 그렇게 걸어간 길이 내 삶의 하루 풍경을 그려준다. 가만히 인생길을 돌아보면 내가 갔던 수많은 길이 오늘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편하고 익숙하게 걸어온 길은 자주 걷다 보면 안주하기도 한다. 혹은 험난한 길이라도 기필코 도전하다 보면 그 길 역시 평범하고도 익숙한 길이 된다. 길은 나를 길들인다. ‘길들이다’라는 말이 ‘길’의 어원인 까닭이기도 하다.

눈에도 길이 있다. 눈이 가는 방향을 ‘눈길’이라고 한다. 눈길이 자주 가는 그곳에 마음이 먼저 간다. 시선이 자주 머무는 그곳이 내 마음을 길들인다.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은 곳도 있다. 마음이 떠난 자리다.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다. 나의 눈은 자주 어디로 향해 있을까? 나의 눈길은 안녕한지, 시선 과잉의 시대를 살면서 나의 눈길은 무탈한지 묻게 된다.

범람하는 콘텐츠는 여기저기서 우리의 시선을 잡으려고 혈안이다. 조회 수와 구독자 수를 높이기 위해 시선을 자극하는 제목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기사만 보면 세상은 정말 끔찍하고 비참하다. 눈길을 끄는 문구나 유해 광고물이 엉뚱한 페이지로 우리 시선을 유도한다. 선거철인 요즘은 또 어떤가? 정치인들은 마치 ‘시선 사로잡기’ 대회에 나선 양 전투적이다. 자극적인 선동과 비방으로 정치적 이슈를 내세워 우리의 시선을 유인하려고 한다. 요즘 ‘시선 강탈’이란 신조어가 있다. 강제로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간다는 말이다. 유권자의 시선, 고객의 시선, 관람객의 시선, 시청자의 시선, 그리고 소비자의 시선이 강탈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의 눈길, 어디로 향하여 있을까? 자극적인 문구와 이미지로 혹사당해 시력은 점점 더 나빠지고 눈치와 눈총으로 영혼의 창인 눈빛이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맹자의 ‘이루상(離婁上)’ 편에서 ‘상대방을 알려면 눈을 살펴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선 눈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눈도 탁하다고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이 가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 있는 곳에 눈길도 있다. 수동적이고 타의적으로, 때론 강제로 시선을 잃으면 마음도 빼앗긴다. 반복적으로 빼앗긴 눈길은 마음과 영혼을 길들이고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스템에 의해 눈은 길을 잃고 만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에 의하면, 눈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기능을 넘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눈만 보고도 그 사람의 내적 정신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디에 자주 눈길을 주느냐에 따라 내 내면의 정신풍경이 드러난다. 나의 눈은 마음과 영혼을 그려내는 붓과 같아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내가 누군지를 보여준다. 그러니 자주 물어야겠다. 나의 눈길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시선은 마음과 영혼이 걸어가는 길이다.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만들어진다. 삶의 지렛대가 되기도 하고 주춧돌이 되어주기도 한다. 공감의 길을 열어주고 따뜻한 마음의 손도 내밀어 준다. 나의 눈길이 가는 그곳에 나의 영혼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영성이 묻는 안부

오랫동안 동네에서 구두 수선을 해온 남자는 일을 하다 가끔 창밖을 봅니다. 그러나 보는 건 사람들의 발뿐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내일 길을 보아라. 내가 갈 터이니’라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때부터 창 너머 발만이 아닌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거지에까지 눈길을 줍니다. 발만 보았을 때 느끼지 못한 세상의 활력과 기운을 얻게 되지요. 그러다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알아챕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지요. 그러면서 그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돌본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이는 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Where love is, there god is also)라는 단편 소설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주인공인 마틴이 어디에 눈길을 주느냐에 따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처음에 마틴은 자신이 만든 구두에만 눈길을 주었죠. 그러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시선의 폭을 확장하게 하지요. 그의 눈길은 발에서 사람들로, 그리고 예수님에게로 옮겨집니다. 눈길이 머무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머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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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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